250728 12:11
여름이다. 지난 주말 소쇄원에 다녀왔다. 담양군에는 폭염 경보가 내려졌지만. 좋아하는 노래 가사가 적힌 부채를 연신 흔들어대도 아빠와 내 얼굴에는 갓 세수한 듯 땀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방문한 소쇄원을 고즈넉하게 즐기기엔 날이 너무 맑았다. 대나무 숲을 지날 때가 되어서야 다들 숨을 돌렸다. 싸악 싸악 잎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군데군데 청년 대나무가 반듯하고 색도 선명해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은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이라고 나리꽃이 피어 있었다. 봉숭아는 풀이 죽어 있었고, 분홍빛 꽃이 만개한 배롱나무는 온통 푸른 공간과 잘 어울렸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 자극도 다채로웠다. 쪼르르 작은 계곡 물이 내려오는 소리, 어린 손님들이 뛰노는 소리, 벌이 윙윙대며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인상 깊었다. 조광조니 양산보니 민간 정원이니 하는 정보는 잊힌 지 오래였다. 그저 마루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을 것 같다. 내가 간 날은 너무 더웠으므로.
방학(放學)이다. 학업을 놓아야 할 때라는 뜻이다. 학기가 한 달 전에 끝났는데도 나는 여태 방학하기를 못내 연습하고 있다. 최소 8시간은 잠을 자고, 몸 움직이는 가벼운 운동을 1시간 정도, 독서든 집중해야 할 일은 3시간 이내로. 생활 계획표가 아무리 잘 짜여도 실제 생활은 그것과 다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 또한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실감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청년으로서 방학은 방학하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학기 중 수업과 과제에 치여 못했던 아르바이트나 대외 활동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다. 모두가 공부하고 집중하는 이 시기에 나는 반대로 공부하지 않고 힘을 빼는 훈련을 한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17년 동안 쉼 없이 공부한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동생과 카페에 왔다. 옆에 앉은 네일 아티스트 지망생은 국가자격증 필기시험을 앞두고 모의고사를 풀고 있다. 나는 취미 삼은 문학 작품 번역을 마치고, 대학 1학년 때 배웠던 알(R)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복습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이렇게 일기를 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이 카페에 앉아 있는 모든 이는 일하거나 집중하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7시부터 23시까지 영업하는 이 카페는 참 한국스럽다.
초콜릿 쿠키가 곳곳에 박힌 스콘을 먹었다. 나는 수박 주스, 동생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는 길에도 역시 더웠다. 그림처럼 완벽한 하늘과 구름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매미가 울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단 하나의 문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 이 날씨라고 말하는 듯했다. 소쇄원에서 만난 매미들은 이리 시끄럽진 않았는데. 도시 매미와 시골 매미는 종류도 울음소리도 다르다고 읽은 기억이 있다. 동생과 나는 횡단보도를 마주할 때마다 그늘을 찾아 움직였다. 그늘은 나눠 쓸 수 있어 좋다. 스콘과 달리 동생이 먼저 선 가로수 그늘에 내가 함께 선다고 해서 그늘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방학은 스콘보단 그늘에 가깝다. 여럿이 함께한다고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지는 기억이 아름답기만 하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아직 한 달가량 방학을 즐길 수 있다. 무리하지 않고, 방학의 뜻을 되새기며 오늘도 실컷 놀아야겠다. 모든 일기를 '재미있었다'라고 끝냈던 초등학생 시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