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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2편) 공감의 진화와 소통의 미래

분석

by 푸른 소금

내 안의 비염이 가르쳐 준 것

15년째 내 안에 살고 있는 비염. 그것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재채기와 콧물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너는 15년 전보다 현명해졌는가?”

의사 앞에서 “나는 그런 병이 아니라고”우기 던 부끄러운 그날.

병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나의 아집에 휩싸여 타인의 전문성을 부정하는 공감능력의 부재와

소통능력을 거부했었다. 현대사회 호모사피엔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공감의 진화 (거울뉴런에서 디지털 단절까지)

인간의 뇌에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라는 특별한 신경세포가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마치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세포이다. 만약에 TV에서 축구선수가 상대 선수의 태클로 그라운드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고 아프겠다. 아니 저 선수는 공을 차야지 왜 사람을 걷어차 나쁜 놈. 퇴장시켜야 돼”보통은 마치

내가 고통을 당한 것처럼 느끼면서 태클한 선수를 비난할 것이다. 상대방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고,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공감이다.

이것이 바로 호모사피엔스가 현생인류가 된 비밀 중 하나이다.

30만 년 전 부족을 이루면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연결고리가 집단의 결속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시대 호모사피엔스는 이 소중한 능력을 잃어가고 있어서 서글퍼 지기까지 한다.

스마트폰에만 의존하여 디지털 기계에 종속되어, 기계 넘어 상대방의 감정이나, 표정 등을 읽어 내는 능력이 퇴화돼 가고 있다.


디지털 자폐증

정보는 넘쳐 나지만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는 ‘디지털 자폐증’ 이것이 현대 사회의 또 다른 현상이다.

SNS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줄어들고 있다.

혼밥, 혼술, 혼여, 혼노...

15년 전 의사 앞에서 보인 내 모습이 그랬다.

전문가의 진단을 들으면서 정작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오직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다.

“내가 감기라고 말하는 데 왜 다른 이야기를 하지?”

공감능력의 심각한 결핍을 보여 주는 사례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호모사피엔스가 앓고 있는 가장 위험한 또 다른 질병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확증편향을 더욱더 극대화시켰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다 뉴스 기사란과 유튜브를 기계적으로 본다. 약속이나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과 관련된 내용을 하루 종일 타임라인으로 노출을 시킨다. 알고리즘은 친절하게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 준다. 이런 환경에 놓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의견이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마치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걸러내는 것처럼, 내 생각은 곡식을 걸러내는 키 역할을 하면서 쭉쟁이만 걸러내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개인에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정치적인 양극화, 세대 간 갈등, 이념의 극단화, 경제적·종교적 차별, 가짜뉴스 확산 등 각종 사회적 분열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대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안에서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 하고만 소통을 하거나,
자기 확신을 강화하여, 편향된 사고에 매몰되는 것이다.


소통의 생리학 (옥시토신과 코르티졸의 전쟁)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진정한 소통이 일어날 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사랑과 신뢰의 호르몬’으로 불린다. 상대방과의 애정과 유대감을 증가시킨다. 반면 갈등상황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어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15년 전 의사 앞에서 내 뇌는 분명 코르티솔 수치가 꽤 높았을 것이다. 의사의 진단을 공격으로 인식하고

방어막을 쳤다. 그러니 소통이 차단되고 옥시토신이 분비될 여지가 없었다.

현대 사회는 이런 코르티솔 중독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온라인에서의 논쟁, 댓글공작, 혐오적 표현들, 그리고 극단화...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항상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상대방을 적으로만 간주하고 양보와 타협, 이해보다는 오로지 이기려고만 한다.

오히려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도는‘약함’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소통의 시대

미래의 호모 사피엔스는 ‘하이브리드 소통’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단일 소통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소통방식으로 접근하여 소통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상호 장·단점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최적의 소통방식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공감의 사회적 비용과 편익

경제학자들은‘공감’을 사회적 자본의 한 형태로 본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고,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회는 갈등해결 비용이 증가하고,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진다.

15년 전 진료실에서 5분간의 갈등은 이후 15년간의 비효율을 가져왔다.

당시에 의사 말을 정중하게 들었더라면, 더 빠른 치료가 가능했고, 병원비와 시간 낭비를 비롯한 육체적 고통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공감부족으로 장기적으로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공감하는 호모 사피엔스로의 진화

현대 호모사피엔스가 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정보를 쌓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기르는 것, 말하기보다는 듣기,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하기다. 그때서야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현명한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의 재 발견 : 미러링에서 멘털라이징까지

그렇다면 공감과 소통방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심리학자들은 ‘맨 털라이징(Mentaliz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추론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상대방의 행동을 따라 하는 미러링을 넘어서, 그 사람의 의도와 감정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려는 의지적인 노력, 그것이 공감의 첫걸음이다.


소통의 기술 : 액티브 리스닝

심리학자 칼로저스가 제시한 ‘액티브 리스닝(Active Listening)’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 그러시구나”, “그런 기분이 드시겠어요”, “그런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요”와 같은 표현들이다. 나는 강의 현장에서 소통과 공감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메아리 공감법(아오와)’을 만들어 실 생활에서 활용하도록 이야기한다. 아∼(안타까움)’‘오∼(놀람),’‘와∼(감탄)’같은 쿠션 언어는 순간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력을 극대화시키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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