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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Oct 24. 2022

10월 24일 탄생화 매화 / 호산 이완종 선생님

오늘의 탄생화 

10월 24일 탄생화 매화이다.


매화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매화 하면 그 향이 떠오르지만 나는 매화꽃을 좋아하신 호산 이완종 선생님이 생각난다.


문인 화가였던 호산 선생님은 생전 매화를 즐겨 그리셨다.


오래전 선생님께 그림을 배우면서 매주 일요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선생님이 자택이며 화실이 있던 도성까지 가는 길은 설레고도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 님이 행선지를 묻는다.


" 도성 소나무 많은 집요."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기사들은 다 알아서 도성 선생님 대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선생님의 집에는 그만큼 소나무가 많았다.

다양한 모습의 소나무가 있던 선생님 댁 정원, 감나무도 종류 별로 있었고, 매화도 몇 그루 있었다. 그리고 정원 중앙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던 삼층 석탑.


2층인 선생님의 집은 1층은 살림집이었고, 넓은 2층은 선생님의 화실로 사용하셨다.


선생님은 기존의 엄한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셨다. 마치 아버지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게


체본도 원하는 만큼 다 해주시고, 국전이나 공모전 출품에 아낌없이 성원을 해 주시고 입상을 해도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셨던 호산 선생님

예술의 전당 / 호산 이완종 선생님



어느 해 겨울 유성호텔 / 김여초 시인 필자 호산 이완종 선생님 안도섭 시인 김시원 수필가


선생님과의 추억은 참으로 많다. 매주 일요일 오전 선생님 화실에서 체본을 받고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대전 근교 맛집이란 맛집은 이때 다 가보았던 것 같다. 선생님 차로 함께 서울에서 내려간 김 원장 님과 셋이서 대청호며, 멀리 대둔산까지...


이제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지방 여행을 하다 고속도로로 대전을 지나게 되면 선생님 생각이 난다.

고속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호산 선생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예술의 전당 전시실에서




호산 이완종 (湖山 李完鍾) 한국 화가


출생 : 1936. 6. 16.

분야 : 회화/판화/평면


수상


1994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사군자 입선

1991년 대덕 향토 문화상

1980년 국전 30회 사군자 특선


경력


2001 충청 미술전람회 운영위원장

2000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장/인천광역시 미술 대전 심사위원/대한민국 서예대전 문인화 심사위원/충청남도 서예대전 운영위원장


정보제공 월간미술 2019.03.25.


매화 [ 梅花 ]


매화는 장미과의 갈잎 중간 키 나무인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로, 매화의 학명은 Prunus mume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미과의 갈잎 중간 키 나무인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채 겨울이 가기도 전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이 피기 때문에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화괴(花魁)’라고 부른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각각 그 이름을 달리하는데 다른 꽃보다 일찍 핀다고 하여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고 부른다. 또한 꽃 색에 따라 흰 꽃은  ‘백매(白梅)’, 붉은 꽃은 ‘홍매(紅梅)’라고 한다.


필자도 사군자를 그리면서 매화를 많이 그렸다.

개인적으로 홍매보다 백 매를 더 선호한다.


옛 선비들은 매화나무를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 이유는 추운 날씨에 굳은 기개로 피는 꽃과 은은한 향기 바로 매향(梅香) 때문이다. 매화차 이야기를 하면서 호산 선생님 매화나무를 이야기한 일이 있다. 호산 선생님 집에서 처음 마셔본 매화차


몹시 추운 어느 이른 봄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비파


"앞으로 운정(芸汀)은 비파를 그렸으면 좋겠어. 우리나라에 대나무를 잘 그렸던 대가들은 많이 있는데 비파를 잘 그리는 사람은 없거든. 그러니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비파 하면 운정(芸汀)으로 남았으면 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비파가 뭔지 잘 몰랐다. 비파 하면 사찰 탱화에서 보았던 선녀들이 연주하는 악기로만 알았었다.


선생님께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과실 나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참 많이 웃었었다. 그리고 비파 사진을 본 나는 기꺼이 선생님의 제의를 수락했다. 대나무가 좋아서 시작한 그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었고, 그때 막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의사 김 원장은 매화를 배우고 있었다. 매화를 그리시다 갑자기 선생님이 매화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고 김 원장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정원에 매화가 피었다며 꽃도 보고 매화 차도 한잔하자고 하셨다.


2층 화실에서 1층 정원으로 내려가니 그 추위 속에 단아하게 피어있던 매화! 선생님 정원에는 매화가 두세 그루 있었다. 그때 핀 매화는 백 매였고 홍매는 아직 피지 않았었다.



매화 몇 송이를 따 화실로 올라와 다탁 앞에 마주 앉았다. 찻잔에 한 송이씩 매화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찻잔에 담긴 매화를 보면서 생전 처음 접하는 매화차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행복했었다.


그날 마셨던 매화차의 은은한 향기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처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풍속화의 대가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했다. 김홍도는 그 매화나무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면서 그림값으로 3,000냥을 주었다. 그러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때 생겨난 것이 ‘매화음(梅花飮)’이라고 한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라며 즐겨 그렸던 옛 선비들이 그중에서도 매화를 즐겨 그렸던 것은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문인 화가인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매화를 귀히 여긴 이유를


첫째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때문이고

둘째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고

넷째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선비들은 매화를 사랑하고 아꼈는데 그중에서도 퇴계 이황(1501~1570)의 매화 사랑은 각별했다. 평생 매화와 동고동락하면서 107편의 매화 詩를 써 매화 시첩을 발간하고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으로 부르며 사랑했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매화에 물을 주거라'라는 말이었다니 그의 매화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인내', '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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