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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Nov 01. 2022

남이섬 가는 길과 이태원 참사

삶의 단상


10월의 마지막 낙엽을 보기 위해 언니와 큰 동생, 조카들과 남이섬 여행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9시에 출발할 때만 하여도 가을을 만끽하러 떠나는 여행에 가슴이 설레었다.


날씨도 좋고 덥지도 춥지도 않다.

더군다나 남이섬을 가 본적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요즘 나는 추억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오래전 갔던 여행지를 찾아 그때와 비교해 보는 묘한 여행을 말이다.


오늘 여행도 그러했다.


남이섬은 지금부터 40여 년 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했던 늦가을 여행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찍은 사진이 내 앨범 속에 있다.


당시 유명 배우였던 이영옥 씨와 주병진 씨가 영화 촬영차 남이섬에 있었고, 어찌어찌하여 이영옥 씨와 사진을 함께 찍은 사진, 젊은 시절 내가 수줍게 웃고 있다.


40년 동안 남이섬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올림픽대로를 벗어나기 전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남양주를 지나자 점점 많아지는 차, 그에 비례해 차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고 12시가 다 될 때까지 우리는 남이섬 근처는커녕 가평군 안에도 들어서지 못했다.


차가 밀리다 보니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고속도로변 가드를 넘어 급한 용무를 보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우리 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졸음쉼터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으나 졸음쉼터도 만 원이라 진입로의 줄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조카들이 역시 머리가 좋았다. 운전을 하는 조카를 대신해 여동생이 운전을 하고 화장실 용무가 급한 조카와 남동생은 화장실까지 뛰어가서 용무를 보고 쉼터 끝 지점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지나가면서 보니 화장실 앞은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다. 조카와 동생이 남자라 신속하게 용무를 보고 뛰어왔다. 다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차는 출발하고 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며 점심이 급하다고 신호를 보낸다.

조카가 제안을 했다. 아무래도 남이섬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은 무리일 테니 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일행은 모두 6명, 13살인 수아를 비롯하여 50대 조카가 둘, 나머지는 60, 70대라 식성이 제각각이니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일도 쉽지 않다. 도로변 음식점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 가기로 약속을 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춘천도 아닌 가평인데 주위 식당은 온통 닭갈비와 막국수 집이다.


모두 닭갈비는 싫다고 한다. 작은언니가 순두부나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자, 수아가 싫다고 한다. 물론 나도 점심으로 찌개를 먹고 싶지 않다. 조카가 이모는 뭘 먹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당연히 막국수지"


그 말에 조카와 동생이 반색하면서 모두 동의한다. 수아와 언니는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한참 호수를 보며 시골길을 달려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허름한 막국수 집 차를 세웠다. 그런데 건물은 낡고 지저분하다. 그냥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데 상호 명 아래 '가평군 선정 100대 맛집'이란 푯말이 우리를 붙든다.

식당 안에는 단체 손님들이 많았다. 모두 숯불 돼지불고기 막국수를 시키고, 가평 잣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막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양념에 가평 특산물인 잣이 들어있어 고소한 맛을 배가 시켰다.

막국수 사진은 찍지 않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워 마시지 못한 커피를 마시고 느긋한 마음으로 남이섬을 향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지나치고

가을 햇살에 아름다운 가을 들꽃도 원 없이 보고 또 본다.

부드러운 가을바람과 상쾌한 공기

길가는 온통 가을 향기로 가득하다. 낙엽과 단풍은 절정을 이루어 차가 막혀도 투정하지 않았다. 이런 멋진 단풍을 보고 드라이브하는 걸로 만족하자고 은연중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보였다.

미처 가을걷이를 하지 못해 서리를 맞고 폭삭 주저 않은 고춧대를 보고 언니는 안타까워하고,

소담스러운 배추를 보고 저 배추로 김장을 하면 맛있겠다며 눈요기를 하며, 콩 농사가 잘 되었다며 저 콩으로 두부를 만들면 얼마나 맛있겠냐는 동생의 바람도 더해진다.

남이섬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도로를 가득 메운 차는 꼼짝도 않는다. 시간은 벌써 1시 30분이다.


내비가 가리키는 남이섬 선착장까지 거리는 1km 그러나 정체는 좀처럼 풀릴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도로 옆 공터에 많은 차들이 주차가 되어있고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무슨 행사를 하나?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는데 조카가 말했다.


"이래 가지고 주차장에 빈자리가 있겠어요? 힘들게 주차장까지 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도 힘들 텐데. 이 사람들은 이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가려나 본데요. 우리도 그럴까요? 1km는 10분이면 걸어갈 텐데."


삼촌의 말에 수아가 펄쩍 뛴다. 자신은 절대로 걸어가지 않겠단다. 그 말을 듣고 남동생이 말했다.


"걸어서 선착장에 가더라도 배 타려면 또 한없이 기다릴 텐데 차라리 의암댐이나 구경하고 오자, 단풍 구경 왔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차를 돌리고 그런데 가까운 곳에 전철 경춘선 가평역이 있다. 남이섬에 오려면 굳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전철을 타고 오면 편할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춘천으로 향했다. 남이섬을 향한 미련은 조금도 없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TV를 보니 이태원 대형 참사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코로나로 3년 동안 갇혀 지내다 너무 갑자기 통제가 해제되어 그런 걸까?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름다워야 할 10월이 너무 큰 슬픔을 남기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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