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담쟁이덩굴은 어린 시절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 중반 전주 남노송동 집들은 대부분 한옥이었는데, 내가 사는 골목 중간에 붉은 벽돌로 지은 멋진 2층 집이 있었다.
한옥집 사이에 우뚝 솟은 2층 집은 단연 돋보였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집주인이 모 대학교수라고 했다. 푸른 대문은 늘 굳게 닫혀있었고,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안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집 전체를 덮은 울창한 담쟁이덩굴로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이층 창문과 흰 커튼이 전부였다.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면 나도 모르게 이층 창을 올려다보았다. 격자무늬의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고개가 아픈지도 모르게 바라보았다.
저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그 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벅찼었다.
담쟁이덩굴이 주는 느낌은 더욱 각별했는데, 담쟁이덩굴의 짙푸른 잎에 파묻혀있는 듯한 집은 아늑해 보였고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나중에 크면 돈 많이 벌어 저 앞에 있는 멋진 이 층집 같은 집에서 살 거예요."
외삼촌이 우리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막냇동생이 한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막냇동생뿐이 아니었다. 우리 골목에 사는 아이들의 모두에게 그 집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담쟁이덩굴이 온 집을 감싸고 있던 그 2층 집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멋진 집이었다. 물론 막냇동생은 그때 꿈꾸었던 것처럼 이층 양옥집이 아닌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담쟁이덩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소설가 오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이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어가면서 이웃집 담쟁이덩굴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기의 생명도 끝날 것이라며 절망한다. 비바람이 휘몰아친 다음날 틀림없이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져 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마지막 잎새가 하나가 남아있었다.
그 마지막 하나 남은 잎을 보고 존시는 삶의 의지를 느낀다. 그렇게 기운을 차린 존시에게 친구 수우는 그 마지막 잎새는 불우한 이웃의 늙은 화가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밤을 새워 담벼락에 그린 이 세상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내용이다.
소녀 시절 이 소설을 읽고 무척 감명을 받았었다. 마치 내가 존시인 것 같은 마음으로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이 겨울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눈물 그렁그렁 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담쟁이덩굴은 쌍떡잎식물 갈매나무목 포도과의 낙엽 활엽 덩굴식물로 학명은 Parthenocissus tricuspidata이다.
지금상춘등(地錦常春藤)이라고 한다.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에 붙어서 자란다.
줄기는 길이 10m 이상 뻗는다.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고 갈라지며 끝에 둥근 흡착근(吸着根)이 있어 담 벽이나 암벽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잎은 어긋나고 폭 10∼20cm의 넓은 달걀 모양이다.
잎 끝은 뾰족하고 3개로 갈라지며, 밑은 심장 밑 모양이고, 앞면에는 털이 없으며 뒷면 잎맥 위에 잔털이 있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보다 길다.
꽃은 양성화이고 6∼7월에 황록색으로 피며, 가지 끝 또는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대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많은 수가 달린다. 꽃받침은 뭉뚝하고 갈라지지 않으며, 꽃잎은 길이 2.5mm의 좁은 타원 모양이다. 꽃잎과 수술은 각각 5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흰 가루로 덮여 있으며 지름이 6∼8mm이고 8∼10월에 검게 익는다. 종자는 1∼3개이다.
잎은 가을에 붉게 단풍이 든다. 한방에서 뿌리와 줄기를 지금(地錦)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어혈을 풀어주고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가라앉힌다. 한국·일본·타이완·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비슷한 종류로, 잎이 5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된 손바닥 모양의 겹잎이면 미국담쟁이덩굴(P. quinquefolia)이라고 한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담쟁이덩굴 [Boston iv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담쟁이덩굴은 울타리(담)에 기어오르며 사는 덩굴이란 순우리말로, 예로부터 담쟝이, 담장이덩클, 담장이넝굴 등으로 불러왔다. 담쟝이란 이름은 울타리의 ‘담’과 접미사 ‘장이’의 합성어로 ‘담에 붙어사는 녀석’이란 의미다.
담쟁이덩굴의 한자명은 파산호(爬山虎)는 ‘산에서 기어 다니는(爬) 모진(매서운) 풀’로 한번 정착하면 좀처럼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담쟁이덩굴은 습기가 있는 땅에서 정상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건조해지면 죽는다고 한다.
담쟁이덩굴은 영어 명은 보스턴 아이비로, 뉴욕과 보스턴 일대에 미국담쟁이가 흔하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의 소설 무대도 바로 뉴욕이다.
속명 파르테노치수스(Parthenocissus)는 희랍어의 처녀(parthenos)와 덩굴(kissos)의 합성어다. 꽃가루받이 없이도 종자를 생산하는 담쟁이덩굴의 처녀생식(處女生殖)으로부터 유래한다. 종소명 트리쿠스피다타(tricuspidata)는 잎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에서 유래하는 라틴어다.
자료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담쟁이덩굴 [Boston ivy, ツタ, 爬山虎] (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 12. 30., 김종원)
그리스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옛날 그리스의 한마을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름답고 착한 히스톰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남자와 얼굴도 모르는 체 약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전쟁이 일어나 그녀의 약혼자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녀의 약혼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다른 청년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나머지 서로 자신이 그녀의 약혼자라고 억지를 부리며 청혼을 하였지만 히스톤은 이들을 모두 거절했다.
히스톤은 약혼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꽃밭에서 아버지를 만난 그를 먼발치에서 보았었다. 자신의 약혼자는 키가 큰 남자였기 때문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오래오래 키 큰 약혼자를 기다리다 그만 죽고 말았다.
히스톤은 죽어가면서 자신을 약혼자가 지나갔던 곳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그 자리에 고이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
그녀의 무덤에서 담쟁이덩굴이 돋아나 약혼자를 보려는 듯 자꾸만 높은 곳을 오르려 했다.
사람들은 담쟁이덩굴을 가리켜 '처녀의 넋'이 깃든 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 그리스에서는 지금도 혼례 제단은 반드시 담쟁이덩굴로 장식하고, 평생 헤어지지 않고 산다는 의미로 여성이 남성에게 담쟁이덩굴을 선물하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남성이 담쟁이덩굴 화관을 쓰고 있으면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신기한 이야기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