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말린 시래기를 삶았다며 이웃이 삶은 시래기를 가지고 오셨다.
우리 가족은 시래깃국을 좋아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시래기를 구입하여 삶아서 한 끼 먹을 분량으로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곤 한다.
그런데 잘 삶은 시래기를 보니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난다.
국민학교 2~3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가 외할아버지 기일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셨다. 고향까지 가는 길이 반나절도 넘게 걸리는 고행길이었지만 어머니는 여자였음에도 외할아버지 기일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빠지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시골에 가셨으니 밥은 아버지 담당이셨다. 아버지를 유난히 따랐던 나는 아버지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날도 아침 준비를 하시려고 일찍 일어난 아버지를 따라 부엌으로 나섰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서 따뜻한 이불 덮고 더 자거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아버지 곁을 지켰다.
쌀독에서 퍼낸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쌀뜨물을 받아 놓은 냄비에 잘 다진 시래기를 쫑쫑 썰었다.
내가 물었다.
"아버지 왜 시래기를 썰어?"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시래깃국은 이렇게 끓이는 거야. 잘 봐라. 시래기는 먹기 좋게 이렇게 쫑쫑 썰고, 여기에 된장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 멸치를 넣고 양념이 시래기에 잘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 쌀뜨물에 끓여야 맛이 있단다. "
아하,
부뚜막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이런 거 몰라도 된다. 나중에 크면 저절로 알게 돼"
그렇게 아버지가 지은 밥과 시래깃국은 아주 맛이 있었다. 아버지가 해준 밥과 국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 것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그러나 평생 잊힐 것 같지 않았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바쁜 일상에 쫓겨 점차 잊혔다.
다른 일을 하느라 늦은 나이까지 나는 살림에는 문외한이었고, 가족과 친척들에게도 너무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밥과 반찬을 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어머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그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을 따로 썼지만 그분에게 우리 가족의 식생활을 전부 맡길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음식을 하는 일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밥을 제대로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밥을 제대로 하는 데만도 한 달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아픈 엄마의 타박을 받아 가며 그렇게 하나 둘 음식을 배웠고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덩그러니 남겨진 동생과 나,
다행히 동생은 내 요리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 점에 대해 동생에게 늘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가 잘하는 요리가 있으니 그게 바로 시래깃국인 것이다. 동생은 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국을 좋아한다.
시래깃국을 끓일 때마다
시래기를 쫑쫑 썰면서 나는 아버지가 그때 내게 해주셨던 말을 되뇐다.
" 시래기는 먹기 좋게 이렇게 쫑쫑 썰고, 여기에 된장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 멸치를 넣고 양념이 시래기에 잘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 쌀뜨물에 끓여야 맛이 있단다"
아버지에게 배운 시래깃국은 동생도 좋아하지만 나 역시 제일 좋아하는 국이기도 하다.
시래기는 무청을 새끼나 끈 등으로 엮어 겨우내 말린 것을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가을이면 집집마다 처마 밑이나 헛간에 주렁주렁 무청이 매달려 겨울을 보냈고, 이렇게 말린 시래기는 가마솥에 푹 삶아 찬물에 담겨 우려내어 겨우내 소중한 식재료로 사용했었다.
대부분 시래기는 된장국으로 끓여 먹었다. 당시 냉장고도, 비닐하우스도 없던 시절이라 겨울철 국거리는 집에서 기른 콩나물이나, 뭇국, 김칫국, 시래깃국이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시래깃국을 가장 많이 먹었던 거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시래깃국은 가난한 집에서 먹는 식재료였었다. 가을철 김장을 할 때 사용하지 않는 무청이었던지라 돈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래기가 갑자기 건강식품으로 부상하면서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식재료가 되었다. 시래기 가격이 덩달아 높아져 시래기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가가 등장하고, 무는 버리고 무청만 수확을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언제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말린 무청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먹던 시래기를 상상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말린 무청은 보기에는 좋았지만 아무리 삶아도 물러지지 않고 질기다. 삶고 또 삶고 네 시간을 삶아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물러지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말린 상태 거의 그대로 있는 무청을 보며 황당했던 적이 있다. 언니에게 물으니 요즘 말린 시래기 잘못 구입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언니도 아무리 삶아도 퍼지 지도 물러지지 않아 그대로 버렸다고 했다.
약이 올라 인터넷을 뒤져 베이킹소다를 넣어보고, 소주도 조금 넣어보고, 나중에는 소금까지 넣어보았지만 무청은 바싹 마른 상태를 고사했다. 하는 수없이 다 버려야만 했다. 그 후로 나는 말린 시래기를 구입하지 않는다. 시래깃국이 먹고 싶을 때면 슈퍼에서 불린 시래기를 구입한다.
시래기를 가장 잘 보관하는 방법은 김장할 때 구입한 무청을 바로 삶아 찬물에 잘 헹군 뒤, 쫑쫑 썰어 된장을 비롯한 갖은양념을 하여 조물조물 무친 뒤, 한 끼 먹을 만큼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소분해 놓은 것을 넣어 국을 끓이면 된다.
시래기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시래기로 다양한 반찬들을 만들기도 한다.
시래기나물과, 시래기를 넣고 죽을 끓이거나, 시래기를 넣고 생선을 조리거나, 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래기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시래깃국이 최고인 것 같다.
말린 시래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충분히 붓고,
설탕과, 베이킹소다
조금 넣어주고
30분 정도 삶은 다음
불을 끄고 그대로 2시간 정도 두었다가
찬물에 여러 번 헹구면 된다.
시래기에는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미네랄은
물론 식이 섬유소까지 고루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매우 좋다.
좋은 시래기를 만들려면 싱싱한 무에서 나온 무청으로, 줄기가 연하고 푸른빛을 띠는 것이 좋다. 시래기와 우거지를 혼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이고, 우거지는 배춧잎을 말린 것이다.
이렇게 좋은 무청을 골랐다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데쳐 냉동실에 보관하거나, 소금물에 살짝 데쳐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서 말려야 비타민 손실이 적다고 한다.
1. 뼈를 건강하게 하고
2. 눈 건강에 좋으며
3. 변비를 예방하고
4. 항암 효과가 있으며
5. 빈혈을 예방하고
6. 혈관을 깨끗하게 하며
7. 다이어트에도 좋고
8. 당뇨를 예방하고
9. 면역력을 강화시키며
10. 피부 건강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