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아버지 지게 위에 앉아 덕유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을 본 후로 그 아름다운 야생화는 내게 천국의 모습으로 고이 남아있다.
산딸기나무가 무성한 좁은 산길로 접어들자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타박타박 걷는 내 이마에 어느덧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하자 저만큼 앞서서 걷던 아버지가 지게를 내려놓으며 말씀하신다.
“안 되겠다. 덕이 너 지게 위에 올라타거라.”
뜻밖의 아버지 제의에 날아갈 듯 기쁘면서도 나는 엄마 눈치부터 살핀다. 엄마는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서도 짐짓 못 들은 체 저만큼 앞장서서 걷고 있다.
“싫어. 엄마한테 혼나.”
“괜찮아, 어서 타래도.”
아버지는 나를 번쩍 안아 바지게 위에 올려놓고 지게를 지고 일어서신다. 지게 위에 올라탄 것은 처음이다. 맨 땅 위에 받쳐놓은 지게 위에 올라가는 일도 무섭고 두려운데 육 척 장신인 아버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지게 위는 너무나 무섭다. 지게 위에서 떨어질까 봐 지게 꼭대기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쭈그리고 앉아 두 눈까지 꼭 감는다.
산새들이 우짖는 소리와 졸졸졸 물이 흘러가는 소리,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가 들으며 나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온통 빽빽한 나무들로 어두컴컴하고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뿐이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여전히 아버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몸의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게 다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일어선다.
“와, 아부지! 이쁜 꽃이 겁나게 많다!”
길가에 수없이 많이 핀 들꽃을 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쁜 꽃이 참말로 많지?”
“근데 아버지! 이 꽃은 다 누구네 거야?”
아버지는 내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다보셨다. 헛웃음을 지은 아버지는 걸음을 옮기면서 말씀하셨다.
“꽃에 무슨 주인이 있냐. 그냥 피는 거지.”
“그럼, 이 산은 누구 건데?”
“이 산? 이 산도 임자가 없다. 그럼 덕이 너는 누구 것이냐?”
아부지는 내게 그렇게 되물었다.
“나? 나는 내 거지.”
“그래. 바로 그거다. 네가 네 것이듯, 저 꽃들과 산도 저 꽃과 산의 것이야. 알았어?”
“아하,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어있는지, 보는 사람이 없어도 꽃은 그렇게 피어나고, 또 그렇게 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일곱 살인 나로서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드넓은 꽃밭을 뒤로하고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들어선다. 서늘한 바람이 울창한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뜨거운 햇살도 무성한 나무에 가려 어쩌다 손바닥만 한 조각 빛만이 나뭇잎 사이로 비춰들 뿐이었다.
“즈 아버지! 힘들 텐데 쪼께 쉬었다가요. 가시나가 기언이 따라와 몸도 성치 않은 즈 아버지 애를 먹이네.”
엄마가 이고 있던 광주리를 풀밭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럽시다. 아침에 좀 짜게 먹었더니 목이 좀 마르네.”
지게를 벗어 놓은 아버지가 나를 덥석 안아 땅 위로 내려놓았다. 엄마가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아이고 시원하다. 덕이 너도 이리 내려와 땀 좀 씻어라. 물이 너무 차가와 손이 시리다.”
엄마 말처럼 계곡 물은 손을 담그기 힘들 만큼 차가웠다. 그동안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계곡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눈 깜빡할 사이에 저만치 아래로 달아나 버린다. 계곡 옆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불어난 물에 허리가 부러지고 꺾인 채 무참히 널브러져 있다.
“조심해. 까딱 잘못해 물에 빠지면 뼈도 못 추릴팅게.”
엄마의 말속엔 여전히 가시가 돋쳐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겁이 안 난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시는 아버지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비록 대놓고 말은 안 하셨지만 오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땀을 식히는 동안 아버지는 막걸리 한 사발에 풋고추를 안주로 드셨고, 엄마와 나는 삶은 감자 한 개씩 먹었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빽빽한 나무들로 한낮인데도 길은 어두컴컴하다. 으스스한 그 길을 한참을 걸어간 뒤 울창한 숲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숲을 벗어나자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들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렇게 넓고 아름다운 들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예쁘고 다양한 꽃들도 그때 이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와! 참말로 예쁘다. 아부지! 저기 저 꽃 이름이 뭐야?”
“그건, 넘 나물이라고 하는 원추리 꽃이다.”
“그럼 저 쪽에 있는 초롱같이 생긴 꽃은?”
“모싯대!”
“그럼 저기 저 보라색 꽃은?”
“그건 꿩의다리!”
“거짓말! 치, 무슨 꽃 이름이 그래?”
“자세히 보거라. 줄기가 꿩의다리처럼 길쭉하고 늘씬하잖니? 그래서 사람들이 이 꽃을 꿩의다리라고 부른단다.”
“아, 그렇구나!”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꿩의다리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부지! 저기 있는 저건?”
“그건, 동자꽃!”
끊임없는 내 질문이 귀찮기도 했을 텐데 아버지는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아부지 귀찮다. 그만 물어보거라. 조그만 가시나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냐?”
나는 엄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꽃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아부지! 저기 저 바늘같이 뾰족뾰족하게 생긴 꽃은 뭐라고 불러?”
“그건, 진범이라고 부른다.”
아버지도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저기 있는 것은 산 오이풀 꽃이고, 그 뒤에 핀 꽃은 흰송이풀 꽃,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엉겅퀴.”
나는 아버지가 일일이 지게 작대기로 가리키며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는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 꽃 이름을 묻지 않는다. 설사 아버지가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해도 내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설사 꽃의 이름을 외운다 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걷는 동안 꽃들의 세상은 끝이 없었다. 아름다운 꽃들은 눈과 마음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꽃길을 걷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지가 계시고 시원한 바람이 함께 있으며 아름다운 들꽃이 지천으로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렇게 많은 크고 작은 꽃들 중에는 거짓말 좀 보태서 내 얼굴만큼 큰 탐스러운 꽃도 있었다. 바람은 시원하게 살랑살랑 불어와 내 뺨을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갔다. 더위란 단어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탐스럽게 커다란 꽃이 요강에 그려진 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꽃 이름이 궁금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물어볼 기력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 덕유산에서 보았던 그때 꽃 이름을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후로 나는 그 어디서도 그 꽃을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찔레꽃 향기>> 중에서
야생화는 인공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상태 그대로 자라는 식물이다.
야생화는 '야화(野花)'라고 부르며, 흔히 우리가 '들꽃'이라고 한다.
2012년 기준으로 국내 야생화는 205과 1,158 속 4,939종이나 된다고 한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계절별로 분류하거나, 서식지에 따라 고산식물, 습지식물로 구분하거나 용도에 따라 관상용, 약용, 밀원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야생화 중에서 비비추 등은 해외에서도 인기 있는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야생화를 계절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대체적으로 3월에서 5월 사이에 개화하는 야생화들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봄 야생화로는 얼레지, 노루귀, 애기똥풀, 민들레, 붓꽃, 할미꽃, 깽깽이풀, 삼지구엽초, 현호색, 은방울꽃, 복수초 등이 있다.
개화시기는 6월부터 8월 사이에 피는 야생화로 비비추, 동자꽃, 곰취, 패랭이꽃, 약모밀, 닭의장풀, 수련, 맥문동, 물봉선, 엉겅퀴, 참나리, 노루오줌 등이 있다.
9월에서 11월 사이에 꽃이 피는 야생화들을 가을 야생화로 분류한다. 구절초, 꿩의비름, 투구꽃, 용담, 참취, 마타리, 국화, 쑥부쟁이, 초롱꽃, 벌개미취, 과꽃, 상사화 등이 대표적이다.
12월에서 2월 사이에도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이 있다. 겨울 야생화로 분류하며, 동백과 솜다리가 있다.
자료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야생화 [wildflower, 野生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