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이야기
오늘은 첫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사랑과 라일락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짧지만 강렬한 만남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조금 쑥스럽지만, 내 젊은 날의 반짝이는 날로 이렇게 남아있는 걸 보니 사랑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듯싶다.
내게 오빠가 있었다.
부모님과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오빠가 대학 3학년 늦가을 갑작스러운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빠가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난 뒤 우리 집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전주를 떠나 성남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오빠가 죽었는데 해가 뜨고 사람들이 웃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 암울한 시절 남한산성에 있는 작은 사찰을 거의 매일 찾았다. 오빠의 영가가 있는 그 작은 암자 법당에 앉아 생사의 덧없음을 슬퍼했다.
어느 해 겨울 아마 신년 초하루였을 것이다. 그날도 눈이 내려 미끄러운 산길을 올라 법당 안에서 한참 오빠를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잿빛 털모자를 쓴 주지 스님이 한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살님 추운데 안으로 들어가 저 분과 이야기 나누시지요."
거기 처음 보는 눈빛이 형형한 잘 생긴 청년이 있었다.
"추운데 잠깐 들어가 몸 좀 녹이고 가시지요."
청년은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아 목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낯설고 당혹했지만, 법당 안의 한기로 내 몸은 꽁꽁 얼어 있어 몸을 녹여야 했다. 그를 따라 요사채로 들어갔다.
그동안 꽤 오랜 날 암자에 다녔지만 요사채를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좁은 방은 창문이 없어 어둠침침해 사물을 분간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따뜻한 방에 엉거주춤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가 신문을 내밀며 말했다.
"이 글 보실래요?"
흘낏 보니 아침에 이미 본 신춘문예 발표 지면이었다.
혹시 그가 이 글의 당선자?
작품을 쓰기 위해 암자에 머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반가운 마음으로 물었다.
"신춘문예 당선되셨어요?"
그가 손사래를 치면서 정색을 한다.
"아니에요, 아침에 읽어보니 소설이 너무 좋더군요."
우리는 멋쩍게 웃었고, 그렇게 그를 만났다. 시와 연극을 좋아하고 군대에서 제대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는 그는 작은 암자의 주지 스님의 아들이었다. 그동안 그를 보지 못했던 것은 그가 군대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오빠가 있는 암자로 향하는 길이 즐거워졌다. 문학과 연극 불교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법당 앞 라일락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날처럼 사찰을 찾은 나는 자연스럽게 눈으로 그를 찾았다. 그런데 법당 뒤에서 못 보던 승려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익숙하다.
바로 그였다. 승복을 입은 그를 보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빙그르르 돌았다.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분명 그였다. 당혹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달리, 조지훈의 승무의 시구처럼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그의 뺨은 홍조까지 띠고 있었다.
"머리를 언제 깎았어요?"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는 침착하려 했지만 가늘게 떨고 있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요."
"자의에 이해서인가요? 타의에 의해서인가요?"
"물론 내가 원한 일이었어요."
아, 그때의 슬픔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때마침 불어오는 미풍에 풍경은 뎅그렁 울었고, 신록의 나무들은 일시에 몸을 뒤척이며 바람을 노래했지만 나는 마음에 이는 회오리바람을 잠재워야 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가겠다는 내 말에 그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냥 간다고요?"
"네, 안녕히 계세요."
어색한 합장을 하고 돌아서서 절 마당을 막 벗어나려는 데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 내일부터 우리 학교에서 축제하는데 학교에 안 오실래요? 초대할 사람이 없어서..."
"어쩌죠, 내일 약속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거짓말 튀어나왔다. 그가 머리를 깎기 전이었으면 스님인 줄 모르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했으련만, 아쉽지만 그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암자를 벗어나 좁은 산길로 접어들면서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그동안 그를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었다. 그때 만약 그의 초청을 받아들여 학교 축제에 참석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그는 어느새 라일락 향기가 되어 내 마음에 흩어지곤 한다.
라일락은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뭇과의 낙엽관목으로 학명은 Syringa vulgaris이다.
원산지가 캅카스와 아프가니스탄인 라일락 나무는 양정향나무라고도 부르며, 베사메 무초라는 노래로 익숙한 리라 꽃이 바로 라일락 꽃이다.
나무 밑에서 새로운 싹이나 가지가 돋아서 포기가 되는데, 높이는 5m 정도이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가을에도 단풍이 들지 않는다.
꽃은 4∼5월에 자주색 또는 보라색 등으로 피고 커다란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향기가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