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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편리함 뒤에 가려진 생명들 – 해충의 중성

삶의 단상

by 가야

♣ 인간의 편리함 뒤에 가려진 생명들 – 해충의 중성화, 그리고 지구의 미래


유기농업기능사 공부를 하면서 ‘해충의 중성화’라는 낯선 단어를 접했다.


단어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이 개념은,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놀라움과 동시에 묘한 슬픔을 안겨주었다.
인간이 자연을, 생명을, 통제하려 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해충의 중성화 – 생명을 멈추는 기술


해충의 중성화란, 말 그대로 해충이 다음 세대를 남기지 못하도록 번식력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이 방법은 살충제 대신 사용하는 생물학적 방제법으로 여겨지며, 다음과 같은 방식들이 사용된다.


· 불임 수컷 방사(SIT)
방사선이나 화학약품을 이용해 불임처리한 수컷 해충을 자연에 풀어 교미하게 한다.
암컷과 짝을 지어도, 더 이상 생명은 태어나지 않는다.


· 성장 호르몬 교란제
곤충이 성숙하지 못하도록 탈피나 생식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번식이 불가능해진다.


· 유전자 조작
특정 유전자를 조작하여 자손이 생존하지 못하도록 만든 해충을 방사한다.
일부는 암컷 자손만 죽도록 설계되기도 한다.


· 박테리아 감염 (Wolbachia)
해충의 생식 과정에 영향을 주는 박테리아를 활용하여,
교미는 하되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유도한다.


이 기술들은 해충의 수를 줄여 농작물 피해를 줄이고, 살충제 사용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개발되었지만,
한편으론 생명을 선택적으로 조절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생태적 의문을 남긴다.

♣ 그들은 해충인가, 생태계의 일원인가?


인간의 눈에 해롭다고 해서 해충이라 부르지만,
그들도 지구 생태계의 한 조각임에는 틀림없다.

진딧물은 무당벌레의 주요 먹이이며,

나방 애벌레는 새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바퀴벌레나 파리는 부패한 유기물을 분해하는 청소부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긴 배설물이나 사체는 토양의 영양분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의 토대를 이룬다.


즉, 그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자연에는 유익한 존재일 수 있다.
그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어낸다면, 무너지지 않을 리가 없다.

♣ 인간의 개입, 지구는 어디로 가는가?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인간 중심적 생명 통제는,
결국 지구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해충이 줄면, 그들을 먹던 포식자도 사라지고

생태계의 먹이망은 끊어지며 불균형이 시작된다.


그 결과는 토양 생태계의 파괴, 작물 다양성의 저하,
그리고 결국은 인간 자신에게 돌아오는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통제’보다는 ‘공존’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살충제를 줄이려는 목적은 고무적이지만, 생명을 끊는 방식이 아닌, 생태계 안에서 조절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 마무리하며 – 생명을 조율하는 대신, 이해하는 쪽으로


해충을 줄이려다, 생명을 줄이고
생명을 줄이다, 다양성을 잃고
다양성을 잃으면, 결국 인간도 외로워진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생명을 중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그 작은 진딧물 한 마리에도, 생태계의 흐름이 담겨 있다.
그들의 생명이 깃든 자리에서, 인간도 다시 삶의 균형을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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