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연일 무더위로 피곤한 요즘,
에어컨 청소를 하다가 불현듯 오래전 여름이 떠오른다.
바람이 흔들리지 않는 정오 무렵, 먼지 낀 교실 창틀 너머로 매미 소리가 쉼 없이 울리고, 그 소리에 눌린 듯 뺨으로 뚝뚝 흐르던 땀. 그 시절, 교실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부채가 유일한 손풍기였고, 종이로 만든 그것을 부지런히 흔들며 여름을 견뎠다.
조선시대의 여름은 어떠했을까.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무더위를 뼈에 새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인들은 바람 한 자락도 ‘은혜’라 여겼다. 여름이 오기 전, 임금은 신하들에게 친히 부채를 내렸다. 이것을 하사선(下賜扇)이라 불렀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바람으로 그대의 충정을 식히라”는 뜻이었고, 그 안에는 임금의 은총과 신뢰가 담겼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합죽선(閤竹扇)’이 가장 귀한 부채로 여겨졌다. 대나무 껍질을 엮어 만든 이 부채는 수작업으로만 완성되며, 전주에서 만든 합죽선이 가장 유명하다. 지금도 ‘전주합죽선’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나 역시 오래전 붓으로 합죽선 위에 그림을 그려, 누군가에게 여름을 선물했다고 하지 않던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부채 위에 얹힌 마음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바람을 만드는 기계’를 만들고자 했다.
세계 최초의 전기 선풍기는 1882년, 미국의 *슈일러 스커리어(Schuyler Skaats Wheeler)*라는 발명가가 만들었다. 단순한 구조였지만, 날개가 회전하며 인위적인 바람을 만들어냈다.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무렵 처음 전기 선풍기가 소개되었고, 일반 가정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회사에 다닐 때, 처음으로 집에 들인 선풍기.
그 선풍기를 통근 버스에 싣고 돌아오며 의기양양하던 그 여름.
아마도 ‘신일선풍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브랜드의 명성을 잇고 있는 그 이름.
당시의 선풍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안에 바람이 들어온다’는 감격이었다.
그러나 선풍기는 어디까지나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킬 뿐이었다.
진정한 ‘여름의 혁명’은 냉기를 만드는 기계, 에어컨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세계 최초의 현대식 에어컨은 1902년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에 의해 발명되었다. 원래는 인쇄소의 종이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고안된 기계였지만, 이후 공공장소와 백화점, 영화관으로 퍼지면서 냉방 장치로 변모하였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 고급 호텔과 대기업 건물에서 처음 에어컨이 가동되었고, 1970~80년대에는 일부 상류층 가정에 설치되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중산층 가정에도 점차 보급되며 ‘여름의 기본 장비’로 자리 잡는다.
이제 우리는 버튼 하나로 온도를 낮추고, 열대야를 피하며 잠든다. 하지만 때로는 그 완벽한 냉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연의 여름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부채를 흔들며 이마의 땀을 닦던 할머니의 손길,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아↗아↘아↗” 하며 소리를 흔들던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 리모컨 하나로 모든 걸 조정할 수 있는 세상.
우리는 점점 더 시원함을 쫓지만, 때로는 그 안에 담긴 ‘정성’과 ‘기억’은 잊혀 간다.
손으로 흔드는 바람에는 마음이 담기고, 땀을 닦는 수건 끝에는 사랑이 묻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 다시 부채를 들어보자.
천천히 흔들어 오는 바람 사이로, 잊고 지낸 여름의 정취와 오래된 기억들이 스며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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