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천일홍, 그 작은 구슬 같은 꽃송이는
햇빛을 머금고 피어나, 바람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열정을 품고 있다.
그 꽃의 뿌리는 멀리 남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다.
과테말라, 파나마, 페루, 브라질…
붉은 대지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강렬한 삶의 리듬이 이어지는 그 땅에서
천일홍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숨 쉬며 자라왔다.
천일홍의 학명은 Gomphrena globosa이며, 비름과(Amaranthaceae)에 속한다.
‘Gomphrena’는 그리스어로 ‘매듭’ 또는 ‘구슬처럼 둥글게 묶인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꽃의 우리말 이름인 ‘천일홍(千日紅)’은
‘천일 동안 붉게 피는 꽃’, 다시 말해 오래도록 색이 바래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 꽃말 역시 아름답다.
“변치 않는 사랑, 영원한 마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옛 페루의 한 고원 마을에는
늘 하늘만 바라보던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웃 마을의 청년을 사모했지만
전쟁과 역병으로 인해 사랑은 시작조차 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녀는 매일 아침 언덕에 올라,
사랑했던 이가 걸어가던 길목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작은 붉은 꽃을 심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꽃은 매년 같은 시기에 피어나,
햇살 아래에서 천일 동안 붉은빛을 지켰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이 천일 동안 피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꽃을
‘천일 동안 붉게 피는 마음’이라 불렀다.
나도 언젠가부터 이 꽃을 심기 시작했다.
가장 햇살 좋은 화단 끝자락,
에어컨 실외기 위의 작은 공간,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그 자리가
천일홍에겐 오히려 제 집처럼 잘 어울렸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무서울 정도로 오래 피는 꽃.
꽃잎은 바스러지지 않고, 말려도 빛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천일홍을 “드라이플라워의 여왕”이라 부른다.
작년에는 113호 언니와 함께 심었고,
그 씨앗은 언니가 젊은 시절 홍은동에서부터 이어온 것이라 했다.
그 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시고,
그 씨앗으로 자란 천일홍은 화단 한편에서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다.
말라가는 가지 끝에서도,
나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천일홍은 햇빛을 매우 좋아한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직사광선이 드는 장소라면 가장 이상적이다.
햇빛이 부족하면 꽃송이가 작아지거나 색이 탁해질 수 있다.
물을 줄 때는 겉흙이 충분히 마른 뒤에 흠뻑 주는 것이 좋다.
다소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에,
습기가 많거나 과습 한 상태에서는 뿌리가 썩기 쉽다.
토양은 배수가 잘 되는 흙이 좋다.
일반적인 배양토에 마사토를 섞어 쓰면
통기성과 배수성이 개선되어 천일홍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꽃이 오래 피는 만큼, 시든 꽃을 바로바로 제거해 주면
계속해서 새로운 꽃송이를 올리려는 생리 작용이 활발해진다.
가을이 되면 꽃이 지고 씨앗이 맺힌다.
마른 꽃대에서 씨를 받아 종이봉투에 넣어 서늘한 곳에 보관했다가
다음 해 봄, 4~5월쯤 다시 파종할 수 있다.
천일홍은 비록 한해살이지만
그 씨앗을 정성껏 거두고 다시 심으면,
매해 여름마다 영원의 붉은 마음을 다시 피워낼 수 있다.
천일 동안 붉게 피지 않아도 좋다.
잠시 피어도 그 빛이 진실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햇살이 지나간 자리,
꽃 한 송이가 말라가고 있다.
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씨앗을 손에 쥔다.
언젠가 또 피워내기 위해.
영원을 믿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