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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Sep 01. 2022

채 껍질을 벗지 못한 슬픈 매미 이야기

가야의 매미 이야기/


지금부터 30여 년 전 종로구 운니동 (구) 덕성여대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고종황제의 생가인 운현궁이었던 역사적인 장소이지요.


역사의 풍랑에 따라 주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대원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일종의 행운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솟을대문으로 출근을 하면 내가 조선시대 대원군이 된 듯한 착각까지 들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매미가 너무 많아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당시만 해도 매미는 귀한 여름 손님이었습니다.


그곳의 매미가 무척 많았습니다.


아침마다 출근을 하여 드넓은 교정을 한 바퀴 돌면 땅바닥은 온통 구멍 투성이었고, 처음에 매미 구멍인 줄 모르고 뱀 구멍인 줄 알고 엄청 두려워했었답니다.


나중에 경비 아저씨 말씀에 매미 구멍이라고 알려주셨지요.


저는 그때 그렇게 많은 매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매미 구멍이 의외로 크다는 데 또 한 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위의 작은 사진은 다양한 모습의 매미 껍질 들입니다.

아래 사진도 역시 위 사진과 마찬가지인 매미 껍질입니다.


숲 전체는 여기저기 간밤에 매미들이 땅을 뚫고 나온 흔적들이 선명합니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저는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나오는 모습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덕성여대에 있을 때 그런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 이런 마음을 알았던지, 저만큼쯤 보통 매미 껍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습니다.

분명 아직 매미가 껍질을 벗지 않았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매미 곁으로 다가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한참을 그 앞에 서있던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매미 껍질들은 손으로 만져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물체를 잡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매미는 두 다리로 풀잎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각도를 달리 찍어보았습니다.


뭔지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매미가 떨어지지 않게 앞발로 줄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매미의 몸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대었습니다.


그런데,

매미가 뚝 떨어져 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화들짝 놀라 얼른 매미를 주워 줄기에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올려놓았습니다.



손에 뭉클한 감촉에 두려웠지요.

가만히 보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보이시지요?

매미의 등에 파르라 한 모습이..


저는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시계를 보았습니다. 7월 26일 오후 2시 12분.


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살며시 옆을 보니 조금 전 보다 많이 부풀어있습니다. (꼭 임산부 모습 같습니다.)


다시 10분이 경과했습니다.

그러나 매미는 더 이상 어떤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호기심을 누르고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로 하였습니다. 욕심 같아선 지켜보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고 싶지만 그건 매미에게 있어 너무 가혹한 일일 테니까요.


약 30여 분이 경과하여 다시 돌아와 보았습니다.


그다지 많이 변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시, 아까 내가 위험해 보이는 매미를 건드려 떨어뜨린 게 문제가 된 것은 아닐까?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ㅠㅠ.)


살그머니 매미의 몸체에 손을 가져가 봅니다.

뭉클하면서 뭔가가 느껴집니다.


다시 20분을 그 앞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아무 일 없이 껍질을 벗기를 기도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뜸하던 장맛비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예보와 함께 서울 경기지방에 호우주의보까지 내린다니 은근히 그 매미가 걱정이 되어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즉 7월 27일 오늘 아침 8시 50분 우산을 들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부디 매미 껍질만 남아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시간이 자그마치 17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매미는 어제 그 모습 그대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거기 있었습니다.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하여 그 매미가 태어나지도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심한 숲은 캄캄하기만 한데,


간밤에도 수많은 매미들이 껍질을 벗고 나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여기저기 어제 보지 못했던 껍질들이 눈에 뜨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무 곳곳에 매미들이 죽은 듯이 비를 맞고 있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날개가 흠뻑 젖은 매미들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어제 내가 본 그 매미도 제대로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왔다면 저 매미들처럼 비를 맞으며 있었을 텐데...


못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런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빗줄기가 점점 거세여집니다. (껍질을 벗는 중에도 죽는 매미가 있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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