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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Aug 26. 2022

반지하 셋방의 서러움과 수원 세 모녀 사건

지난 8월 8일 밤 폭우가 쏟아졌다

엄청난 양의 비였다. 

하늘이 캄캄하고 세상은 온통 빗줄기로 가득 찼다.


밤새 내리는 비를 보며 이렇게 며칠만 내리면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내 생각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은 이튿날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지난 8일 밤 서울에 기록적으로 내린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뉴스였다.


8일 오후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남 일대 도로가 침수되어 차들이 물에 잠겨 운행을 포기했으며 심각한 교통대란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침수로 인명피해를 입은 경우를 본 것은 이번 비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8월 8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진흥아파트 앞 도로 모습 / 신림동 반지하 사진 출처. [동아 DB]


다음 날 정시에 퇴근을 한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목숨을 잃은 반지하를 방문했고, 반쯤 드러난 창문을 통해 그 지하방을 바라보는 뉴스를 보고 나는 그만 아연해졌다. 과연 어떤 생각으로 저곳을 방문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불행한 장소를...


까닭 모를 슬픔이 솟구쳤다.


반지하 내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재개발을 하여 아파트가 되었지만 당시 우리 집은 양평동에 위치한 2층짜리 연립주택이었다. 1층과 2층 두 가구 평수만큼 인 반지하는 1층과 2층이 나란히 양분하여 주택으로 사용하여 그곳을 창고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신촌에 음식점을 개업하면서 어머니와 작은 동생이 그곳으로 이사를 하고 나는 작업실로 생활 터전을 옮기면서 큰 동생네 가족이 그 집에 살게 되었다.


큰 동생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연립주택 2층을 세를 주고 반지하를 방으로 꾸미고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 그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층 주차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반지하 방을 들여다보면 그 초라한 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곳에 말이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큰 조카는 다섯 살, 그 아래 조카는 세 살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집 모임은 상대적으로 넓은 식당에서 하게 되었고 양평동 집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조카가 내게 물었다.


"고모! 우리 집에 왜 안 와요?"


나는 이 뜬금없는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머뭇거리고 있는 데, 조카가 그 까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져 혼잣말처럼 한 말은,


"우리 집이 반지하라서 안 오는 거지요?"


순간, 나는 목이 멨다.

너무 당황하여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고개를 도리질하며 힘껏 조카를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누가 네가 반지하에 산다고 놀리던?"


"응, 2층 사는 얘가 놀려. 반지하에 사는 거지라고..."


마음이 여린 조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조카는 어머니가 70이 넘어 얻은 귀한 손자였다. 엄마가 그 말을 들었으면 당장 양평동 2층으로 달려가 그 아이를 요절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고? 2층에 사는 얘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2층 주인은 우리였고, 형편상 세를 놓은 것이었는데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아이가 주인집 아들인 조카에게 반지하에 사는 거지라고 놀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00아 반지하에 이사 오기 전 2층에 너네가 살았었잖아. 너네 엄마나 아빠가 아무 말도 안 했어?"


"무슨 말요?"


"2층이 너네 집이라는 말 말이야, "


2층이 조카네 집이라는 말에 조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고모, 그 말이 정말이에요. 2층이 정말 우리 집이에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나는 조카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00 이가 반지하에 산다고 아이들이 놀리더란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금시초문이란다. 부모에게도 하지 못하고 아픈 마음을 혼자 삭였을 다섯 살짜리 조카에게 그런 아픔을 준 동생 내외가 미워졌다.


동생이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세를 주었던 2층을 내보내고 다시 2층으로 이사를 했고 반지하는 비워두었다. 자신이 살아보니 사람이 살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비워두기로 했단다. 15평가량 되는 그 공간을 우리는 허드레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며, 내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잡다한 골동품과 글씨 체본이며 책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2006년 서울 양평동이 침수되는 일이 일어났다. 동생네 동네는 침수되었고 동생이 잠시 거주했던 반지하도 물에 잠겼다. 그곳에 있던 짐은 다 버려야만 했다. 삼성물산 측에서 손해배상을 해주었지만 도배비와 수리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반지하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습하고 눅눅하다며 살 곳이 못된다던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 곳인 줄 알면서도 살 수밖에 없는 


반지하 주민들!


며칠 전 수원에서 또 절박한 가난으로 내몰린 세 모녀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어떻게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남편과 아들은 저세상으로 떠나고 세 모녀의 시신을 거두어줄 친척도 없어 수원 시장의 직권으로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고 한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길...


언제쯤

우리는 이런 가슴 아픈 뉴스를 보고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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