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이야기
– 사랑이란 이름의 스펙트럼 –
그녀는 장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흔하고,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빨간 장미는 너무 뻔했고, 분홍 장미는 유치했다.
노란 장미는 어쩐지 속이 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가, 이상하게도 요즘은 장미가 좋다고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말을 웃으며 되받았다.
"그게 아니라, 이제야 그 색 안에 담긴 말들을 조금씩 알겠더라고."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어느 날 오후, 그녀와 함께 장미정원을 걷게 되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꽃들은 제각기 다른 말을 건넸다.
우리는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장미를 하나씩 꺼내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빨간 장미는… 처음이었어.
누군가 날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한 게.
그래서 오래도록 무서웠지. 그 사람도, 그 말도."
빨간 장미의 꽃말은 _사랑, 정열, 아름다움_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정열이 지나간 자리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었다.
"분홍 장미는 엄마야.
조금 낡은 앞치마에 꽂아두셨던 그 조그만 장미.
어릴 땐 왜 꽃을 그렇게 좋아하나 싶었는데,
이젠 나도 그렇더라."
분홍 장미는 _감사와 행복한 사랑_을 뜻한다.
그녀는 이따금 눈을 감고 분홍을 떠올리곤 했다.
그건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처럼, 따뜻한 위로였다.
"노란 장미는 친구야.
질투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지.
그래도 결국 손을 잡아준 건 그 친구였어.
지금은… 멀어졌지만."
노란 장미는 _우정과 기쁨, 그리고 질투_의 양면성을 품고 있다.
밝은 색이지만, 꼭 밝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보라 장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이건 너야.”
나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 좀 이상했거든.
뭐랄까…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 같았어.
기묘하고, 낯설고, 그런데 끌렸지.
그게 뭐였는지 이젠 알아. 마법 같은 끌림이었어.”
보라 장미는 첫눈에 반한 사랑,
그리고 _신비와 존경_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의 고백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오래도록 마음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날의 마지막은 흰 장미였다.
하얀 꽃잎 사이로 노을이 스며드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내가 죽거든, 이걸로 장식해 줘.”
나는 놀라서 웃었다.
“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그녀는 웃지 않았다.
“이 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래.
순수함, 존경, 영원한 사랑… 그게 다 여기 들어 있대.
나는 그런 식으로 기억되고 싶어.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사람으로.”
그녀는 어느새 장미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의 모양이 달라지고, 삶의 색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장미는 이제 그녀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전해주는 꽃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꺼내기 어려운 감정,
그날의 미소와 눈물,
그리고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름까지.
모든 게 그 꽃 속에 담겨 있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색의 장미를 닮았나요?
그리고 어떤 마음을, 누구에게 건네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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