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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오드리 헵번과 나의 중학 시절

삶의 단상

by 가야

우리가 모두 햅번을 사랑했던 그 여름 – 『로마의 휴일』과 나의 중학 시절


중학교 2학년, 여름의 끝자락.
우리는 단체로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습니다.


‘무슨 영화일까? 괴수 영화? 액션?’
아이들은 장르를 맞혀보며 소란스러웠지만,
곧 전해진 제목은 뜻밖이었죠.

『로마의 휴일』.

처음 듣는 이름,
제목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저, 학교에서 단체 관람이라면 무조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전주 코리아 극장.
그 시절 전주에서 가장 좋은 극장이었습니다.


기둥은 번듯하고 간판은 번쩍였고,
무엇보다 극장 주인의 딸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은
아이들 사이에서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죠.


관람은 늘 단체로 이뤄졌습니다.
줄을 맞춰 입장하고, 이름을 확인하고,
때론 표도 없이 번호만 불린 채 들어가곤 했지요.


그날따라 관객이 유독 많아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영화를 본 아이들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극장 뒤편, 까치발을 든 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아이들.
그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드리 헵번’을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까만 눈동자에 눈을 뗄 수 없었어요.


햇살을 머금은 듯한 짧은 머리,
사랑스러운 입술,
단정한 자세와 고운 미소.


“나는 나라를 가질 수 없어요.
단지 오늘, 이 하루만이 나의 자유입니다.”
– 『로마의 휴일』


그녀는 단지 공주가 아니었어요.
자유롭고 반짝이는 존재였습니다.


로마 거리에서 스쿠터를 타고 미소를 지을 때,
우리는 이미 그녀의 뒤에 타고 있었던 것처럼
그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운로드.jpg
로마의 휴일 포스터


“햅번 진짜 예뻐… 나도 저런 머리 해볼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집에 가자마자 머리를 싹둑 자르고,
누군가는 거울 앞에서 햅번을 흉내 내며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시절엔
머리 모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교칙은 엄격했고,
머리는 귀밑 1cm 이상이면 벌점,
양 갈래도 금지였어요.


머리 길이를 잰다며 운동장에 줄지어 앉히고
선생님들이 자를 들고 다니던 풍경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나마 무용 특기생이나 합창단 아이들은
예외적으로 머리를 조금 기를 수 있었죠.


우리는 그 친구들의 머리끝을 부러워했고,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고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곤 했습니다.


그 시절은 단지 교칙만이 엄격했던 게 아니었어요.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입시 준비에 내몰리던 시기.


틀리면 맞았고,
실수하면 혼났으며,
자신의 마음보다 성적이 먼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PublicDomainPictures.net - Audrey Hepburn.

그래서였을까요.
『로마의 휴일』은 그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햅번의 눈빛 하나, 거리의 바람 하나가
꾸지람도, 채점도 없는 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혼내지 않던 그 세계,
그 하루가 얼마나 눈부시고 달콤했는지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햅번은 단지 예쁜 배우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삶의 끝까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가난한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말들 중 제가 가장 아끼는 한 줄은 이거예요.


“아름다운 입술을 원한다면,
친절한 말을 하세요.
아름다운 눈을 원한다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보세요.”
– 오드리 헵번


그녀는 화면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단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그 빛바랜 날들의 이야기.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소중한 기억으로 반짝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노란 장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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