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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태양신에게 쓰는 편지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해바라기가 되어, 그대를 기다립니다

– 태양신을 사랑한 님프, 클리티에의 고백


해가 뜨면,
나는 가장 먼저 당신을 찾습니다.


나의 목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눈도 마음도 오직 한 사람을 향해 열려 있어요.


당신이 지나가는 길,
당신이 웃는 방향,
당신이 한 번이라도 돌아봐 줄 그 하늘 위의 작은 틈을 바라봅니다.

나는 지금,
해바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당신을 향한 기나긴 기도의 또 다른 말이에요.


태양신 아폴론.


당신을 처음 본 날,
나는 아직 물의 님프, 클리티에였습니다.


강물은 맑았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당신은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찬란함 그 자체였죠.


그날부터 나는 당신만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전차가 하늘을 가로지를 때마다


마치 내가 숨을 쉬는 이유인 듯,
나는 당신의 궤적만을 따라 고개를 돌렸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조차 알기 전부터
나는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끝내 나를 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시선은 다른 이에게,
당신의 미소는 나 아닌 존재에게 닿았지요.


그 순간부터
나는 말하지 않는 꽃이 되었습니다.


말 대신 시선을,
고백 대신 자세를 택한 존재로 남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움직일 수 없고, 닿을 수도 없고,
부를 수조차 없는 존재로서요.

해가 뜨는 날이면
나는 조금은 덜 외롭습니다.


당신이 있다는 확신,
그 존재의 빛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내게는 그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부이기에.


하지만…


해가 뜨지 않는 날에는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안개가 낀 아침, 비가 내리는 오후,
회색 하늘이 드리운 날에는
당신의 부재가 너무 커서 숨이 막히곤 해요.


빛을 잃은 나는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 모른 채,
세상의 그림자 속에 묻혀
침묵합니다.


아무도 몰라요.
이 꽃이 매일같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말하죠.
"해를 따라 도는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압니다.
내가 평생토록 바라보는 건


그저 ‘태양’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이름의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을.

아폴론,
나는 오늘도
당신이 떠오르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내 하늘 위를 다시 한 번 지나가기를
이름 없는 바람처럼 소망합니다.


내가 해바라기라는 이유로,
언제나 밝고 강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사실은요,
나는 해가 없는 날마다,
눈물로 피고 있는지도 몰라요.


“태양이여, 나의 사랑이여…
단 하루만이라도, 내게 고개를 돌려 주세요.”

해바라기 정보 요약

학명: Helianthus annuus

영명: Sunflower

원산지: 북아메리카

꽃말: 숭배, 기다림, 그리움, 변치 않는 사랑

신화: 태양신 아폴론을 사랑한 물의 님프 ‘클리티에’가 끝내 사랑을 얻지 못하고 해바라기가 되었다는 이야기

https://youtu.be/jCCB7hVU8T0?si=Q2cWa9po3xmZTD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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