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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위에 내려앉은 여름 한 조각

8월 10일 탄생화

by 가야

이끼 위에 내려앉은 여름 한 조각


조용한 여름날,
누군가의 마루 끝, 바위 위에는 푸른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말없이 피어난 작은 생명 하나,
그 위로 풍란 한 송이가 고개를 들고 여름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죠.


바로 그런 풍경 속에, 옛 선비들의 여름이 있었습니다.

여름을 즐기는 선비의 방식


조선의 선비들은 더위를 잊기 위해 산으로 들로 피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차가운 수석을 마루 끝에 올려두고,
그 위에 이끼를 얹고, 그늘진 바람을 타고 자라는 난초 한 포기를 심었습니다.


아주 작고 단출한 그 세계는,
사실상 거대한 자연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시 한 수를 읊고, 차를 우려내며,
마루 끝에 돋아나는 이끼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바로 선비들이 즐기던 ‘여름의 풍류’였지요.

바위를 덮는 생명, 이끼란?


이끼는 Bryophyta라 불리는 선태식물의 일종으로,
씨앗이 아니라 포자로 번식하고,
잎과 줄기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고등 식물의 조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햇빛이 약하고 습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뿌리 없이도 바위나 나무껍질, 흙 어디든 착 달라붙습니다.


전 세계 2만여 종 이상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도 800종 이상의 다양한 이끼가 자생합니다.


특히 수분 조절 능력이 뛰어나
비가 오면 물을 머금고,
가물면 스스로 수분을 줄이며 ‘잠든 듯’ 버티는 생명력을 가졌지요.


그래서 이끼는
화려한 꽃 대신 ‘겸손’과 ‘인내’라는 꽃말을 품고 있습니다.


바위 위에 피어난 난초 한 포기


풍란이든, 석곡이든,
그들이 바위 위에 심었던 난초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살짝 고개를 흔들며,
향 하나 뿜어내고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그들은 절제와 겸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그 속에 담긴 비움의 미학, 여백의 철학이
바로 조선 정원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끼는 말이 없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바위를 덮고,
늘 축축한 그늘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이끼.
조용하지만, 그 존재감은 누구보다 깊었습니다.


아마도 선비들은 그것을 알았을 겁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가장 낮고 조용한 목소리를.
그래서 그들은 이끼를 밟지 않고, 쓰다듬듯 마당을 걸었겠지요.

바쁜 오늘, 이끼 한 줌 놓아보세요


만약 요즘 당신이 지치고, 숨이 턱 막힌다면
작은 유리병에 이끼 한 줌을 놓아보세요.


말없이 당신 곁에 머물며,
고요한 위로가 되어줄 거예요.


여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당신의 마음속에도 푸른 이끼가 내려앉기를.

이끼 정보 요약

이름: 이끼 (Bryophyta)

영문명: Moss

분류: 선태식물

번식: 포자로 번식, 뿌리 없음

서식지: 숲, 바위, 습지, 그늘진 담장 등

꽃말: 겸손, 인내, 고요함

활용: 테라리움, 벽 장식, 습도 조절, 감성 인테리어


https://youtu.be/jX8Qy90-o4k?si=SeEghD9i1im4n3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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