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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에도 표정이 있다면 – 벨가못을 닮은 오후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 향기에도 표정이 있다면 – 벨가못을 닮은 오후


햇살은 한낮을 지나며 차분해졌다.


바람은 창을 밀어 열고,
나는 조용히 물을 끓였다.

포트 안의 물이 부드럽게 속삭이는 동안,
나는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낸다.


얇은 종이 틈 사이로 퍼져오는 향.
단숨에 심장을 눌렀던 그 상큼함,


벨가못이었다.

밸가못 오렌지


향기에도 표정이 있다면,
벨가못은 분명 웃고 있는 얼굴이다.


살짝 수줍지만, 금세 친숙해지는 사람처럼.
레몬처럼 톡 쏘지도 않고, 오렌지처럼 물러나지도 않고—
그 절묘한 균형이 좋았다.


나는 그것을 ‘햇살의 냄새’라고 불렀다.


너무 눈부시지 않은 오후 세 시쯤,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햇살이 벨가못과 닮아 있었다.

얼그레이 티를 처음 마셨을 때,
나는 홍차가 이렇게 밝고 투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벨가못이 있었다.


고전적인 찻잔의 분위기 속에서
한 방울의 벨가못은 놀랍도록 현대적인 향을 남겼다.


향은 가끔 기억보다 더 정확하다.


누군가의 손끝, 짧은 여행,
가슴속에 묻어둔 그리움조차,


벨가못 한 잔에 되살아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쉽게 과거와 재회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벨가못 향 오일을 손목에 떨어뜨려 본다.


지나가던 바람이 그 향을 데리고 나를 스쳐가면,
어디선가 나도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 있을까.


향기로 남는 사람,
그것은 얼마나 근사한 작별일까.


오늘도 나는 향기 속에서 하루를 덜어낸다.


진하지 않고,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그 어딘가에 걸쳐 있는 향.


벨가못은 그런 향기다.
사라지기 전에 한 번쯤 고개 돌려 바라보게 되는,


한 계절의 뒷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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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 이야기 – 벨가못이란?


이름: 벨가못 (Bergamot orange)

학명: Citrus bergamia

원산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쓰임새: 얼그레이 향료, 아로마 오일, 향수

꽃말: “기억 속의 향기”, “치유”

에센셜 오일 주요 효능: 스트레스 완화, 감정 안정, 항균, 소화 보조


https://youtu.be/45xERIP9frQ?si=OfCCVtfQxVKBny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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