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베르가못(벨가못) 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불타는 열정, 그러나 연약했던 – 벨가못 이야기


햇살이 따가운 어느 여름날,
화단 한 켠에서 유난히도 붉은 꽃 한 송이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세상 모든 열정이 그 안에 깃든 듯,
속삭이듯 향기를 내뿜던 그 꽃, 벨가못.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퍼지는 시트러스 향.
달큰하면서도 상쾌한 그 향은


마치 오랜 기억 속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듯
낯설고도 익숙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벨가못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치유의 허브, 벨가못


벨가못은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허브로,
학명은 Monarda didyma 몬라르다 디디마,
북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지입니다.


붉은 꽃잎은 북미 원주민들에겐
전쟁과 치유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분쟁을 멈추고자 벨가못 향을 태워 평화를 기원했고,
상처를 입은 전사들은 이 허브로 아픔을 달랬다고 하지요.

‘오스웨고 티(Oswego Tea)’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차로도 마셨던 이 식물은
지금도 허브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꽃말과 이름 속에 담긴 의미


벨가못의 꽃말은
불타는 열정, 치유, 위로, 정열.


그 뜨거운 붉은빛은 마치
누군가를 향한 깊은 감정처럼 타올랐고,
그 향은 멀어진 기억을 부드럽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름은 이탈리아의 베르가모(Bergamo)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유럽에 전해졌을 때 그 지방을 통해 향유가 수입되면서
‘벨가못(Bergamot)’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오래 남지 못했습니다


저는 직접 화단에 벨가못을 심었습니다.


강한 햇살 아래에서도 씩씩하게 자라고,
벌과 나비가 찾아들며 정원은 한층 더 생기를 띠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꽃잎은 시들고,
잎사귀엔 하얀 가루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흰가루병.

꽃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곁에서 바라보는 저의 마음은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마다
마음 한 켠도 함께 아려왔습니다.


몇 해를 키워봤지만
결국 저는 벨가못을 화단에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움은 향으로 남았고,
잊지 못할 여름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리워지는 꽃


때로는 너무 아름답기에,
오래 두고 볼 수 없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 꽃들은,
마음속 정원에서 더욱 선명하게 피어나지요.


벨가못이 제게는 그런 꽃입니다.


다시는 키우지 못해도,
그 향과 빛은 언제나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나길 바라게 합니다.


https://youtu.be/e-_SZZ-S85s?si=nkY8ACX8_FhCkC-Q



#브런치에세이 #벨가못 #허브정원 #치유의꽃 #정원의기억 #흰가루병 #허브이야기 #여름정원 #꽃에세이 #가드닝일기 #꽃으로기억하기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탄생화 연재를 다시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