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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미인, 분꽃 – 마라비야 델 페루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밤의 미인, 분꽃 – 마라비야 델 페루


해가 기우는 오후 네 시, 그녀는 조용히 깨어난다.
온종일 햇빛 아래 감춰두었던 감정을
붉게, 노랗게, 은근하게 펼쳐 보인다.


세상의 꽃이 태양을 향해 피어나는 동안,
그녀는 오직 달빛을 위해 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밤의 미인, Bella de noche"라고 불렀다.

사랑을 기다리다, 꽃이 되다


아주 오래 전, 페루의 고산 마을에 마리아라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달의 사제를 사랑했고, 그는 별의 뜻을 읽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났다.


그 후로 마리아는 매일같이 해질 무렵 언덕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어느새 시간이 되었고,
시간은 다시 꽃이 되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해 질 무렵 피어나고
별이 뜨면 조용히 오므라드는
이상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속삭였다.
"그건 마리아의 사랑이야. 지금도 매일 저녁 피어나는…"

이름 많은 그녀


이 꽃의 이름은 많다.
미라빌리스 할라파(Mirabilis jalapa) – 놀라운 할라파의 꽃이라는 학명.
마라비야 델 페루(Maravilla del Perú) – 페루의 경이로움.
베야 데 노체(Bella de noche) – 밤의 미인.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선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플로르 데 라스 꽈뜨로(Flor de las cuatro) – 4시에 피는 꽃.


하나의 이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어,
그녀는 시간을 품고, 그리움을 안고, 다양한 언어로 피어난다.

우리 동네 마당 한 켠의 기적


어린 시절, 마당 한 켠에서 피어나는 이 꽃을 보며
우리는 ‘분꽃’이라 불렀다.


화장품처럼 곱게 가루 뿌린 듯한 꽃잎,
자그마한 씨앗을 모아 손바닥에 꼭 쥐고 다니던 기억.


이국의 이름을 지닌 이 꽃이
어느새 우리 곁에 와,
한 여름 저녁을 물들인다.

그녀의 꽃말

덧없는 사랑

기다림

하루의 끝에서 피어난 감정

시간의 마법

기본 정보

학명: Mirabilis jalapa (미라빌리스 할라파)

영명: Four O’Clock Flower

원산지: 남아메리카 (페루, 멕시코)

개화시기: 6~9월

특징: 오후 4시경부터 피며, 아침에 오므라듦. 한 그루에서 다양한 색상의 꽃이 피어나기도 함.

꽃말: 덧없는 사랑, 기다림, 하루의 마법


https://youtu.be/wqk0WWI_Iho?si=dfrvOnyIX9nl2h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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