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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고백 - 주목나무 이야기

9월 23일의 탄생화

by 가야

9월 23일의 탄생화 – 주목, 천 년을 사는 나의 고백


나는 주목(朱木, Taxus cuspidata).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천 년을 넘어 살아가는 나무.


사람들은 나를 영원의 나무, 혹은 죽음을 품은 나무라 부릅니다.

나는 수많은 계절을 보았습니다.


봄의 설레는 꽃망울, 여름의 뜨거운 햇살, 가을의 붉은 단풍, 겨울의 고요한 눈.
그 모든 계절 속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나는 죽음을 지키는 나무였습니다


동양에서 나는 마을 어귀나 무덤가에 심어졌습니다.
붉은 열매는 피와 생명을 닮아,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표식이 되었지요.


절의 경내에 뿌리내린 내 형제들은 불가의 가르침과 함께 숨을 쉬며,
세속을 떠난 이들을 조용히 품어주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나를 묘지의 나무라 불렀습니다.


켈트족은 내 가지에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보았고,
중세의 교회 마당에는 내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두려워했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영생을 기도했습니다.

나는 문학 속에서 불멸과 고독을 이야기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내 가지를 마녀의 독약에 넣었고,
테니슨은 무덤 옆의 나를 ‘차갑고 무정한 나무’라 노래했습니다.


브론테는 황량한 무어 언덕 위에 내 자태를 세워,
주인공들의 격정과 죽음을 함께 드리웠지요.


나는 문학의 언어 속에서 늘 죽음과 영원,
그리고 인간의 고독을 상징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내 붉은 열매는 달콤한 껍질을 지녔지만, 속은 독을 품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 나 또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요.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삼키면 심장이 멎지만,
나를 올바로 바라보면 영원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고상함을 잃지 않습니다.
찬 바람에도 푸르름을 지키고, 폭풍우에도 꺾이지 않습니다.

나의 꽃말


사람들은 나의 기품을 보며 “고상함”이라 불렀습니다.


사계절을 거쳐도 잎빛이 변치 않는 나의 생명력을 보며,
“죽음을 넘어선 영원”이라는 이름을 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고상함 속에는 차가운 고독이 숨어 있고,
그 영원함 속에는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합니다.


나는 늘 두 얼굴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나의 붉은 열매


가을이 되면 나는 붉은 보석 같은 열매를 달아,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습니다.
겉껍질은 달콤하여 새들이 날아와 맛보곤 합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호기심 많은 이들이 나의 붉은 껍질을 맛본 적이 있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안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내 열매의 붉은 겉껍질은 안전하지만,
그 속의 씨앗과 잎, 줄기에는 탁신(Taxine)이라는 독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삼킨다면 호흡이 막히고, 심장은 멎을 수 있습니다.


나는 늘 이렇게 속삭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다가오지 말라. 내 아름다움 속엔 죽음의 비밀이 숨어 있다.”

천 년을 사는 나의 목소리


나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것입니다.


왕조가 흥망 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사랑과 이별이 스쳐 가는 동안
나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9월 23일의 탄생화로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고독이 영원의 또 다른 이름임을,
나는 천 년의 삶으로 증명한다.”


https://youtu.be/50NeCpoF9fw?si=cs3NZaGhOlTz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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