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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귀리, 소박한 위로의 꽃

9월 25일의 탄생화

by 가야

9월 25일의 탄생화 ― 메귀리, 소박한 위로의 꽃


나는 메귀리.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들으면 흔히 귀리와 닮았다고 말하지. 사실 나는 곡식이 아니라 들풀에 지나지 않지만, 밭둑이나 길가에 서 있으면 꼭 농부의 땀방울 곁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마 그래서 ‘밭에 피는 귀리 같은 풀’이라 불리게 되었겠지.

내 키는 크지 않아. 바람이 불면 쉽게 흔들리는 20~30센티 남짓한 몸, 그리고 줄기 끝에 모여 달린 연분홍빛 작은 꽃송이들. 화려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지만, 내 나름의 단아함을 간직하고 있단다.


나는 혼자서는 잘 살아가지 못해. 뿌리 끝을 조심스레 뻗어 이웃 식물들에게 기대어야만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지. 누군가는 나를 ‘반기생 식물’이라 부른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빌려 쓰는 힘만큼, 다시 흙과 바람 속으로 위안을 흘려보내니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까.


내 씨앗은 개미들의 발걸음을 따라 먼 길을 떠난다. 씨앗 끝에 달린 작은 기름주머니가 개미들을 유혹하면, 그들은 나를 등에 지고 숲길 저편으로 옮겨다 놓는다. 덕분에 나는 매년 새로운 들판과 새로운 햇살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나의 여정은 작고 미약하지만, 그 속에는 은밀한 동행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사람들이 내게 붙여준 꽃말은 “위로”다. 나는 잘난 듯 뽐내지 않고, 그저 바람 따라 고개를 끄덕일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된다니, 참 고맙고 신기한 일이다. 농부가 밭둑에 앉아 땀을 훔칠 때, 아이가 뛰어놀다 꽃을 꺾어 손에 쥘 때, 그 순간 나는 말없이 그들의 곁에 머문다.


나는 귀하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꽃. 그러나 너의 일상 한켠에서 문득 눈길을 마주친다면, 그 순간만큼은 작은 위안이 되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들판에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속삭인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어.”


https://youtu.be/SR__8O6XBdI?si=EJzfRkbtX4lD2O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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