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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풀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나는 차풀입니다


나는 차풀, Chamaecrista nomame라 불리는 작은 풀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면 미모사라 착각하곤 하지요. 하지만 손길에 움츠러드는 성질은 내겐 없어요. 나는 오직 태양과 달의 길을 따를 뿐. 해가 지면 잎을 접고, 새벽빛이 스며들면 다시 잎을 열지요. 마치 하루의 호흡을 온몸으로 반복하는 듯,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름의 비밀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듣고 의아해합니다. ‘차풀이라니, 혹시 차나무와 친척인가?’ 하지만 나는 차나무와는 전혀 다르지요. 내 이름은 생김새가 아니라 쓰임새에서 비롯되었답니다.


예전엔 차가 귀해서, 서민들은 나를 말려 끓여 마셨습니다. 잎과 줄기, 꽃까지도. 볶아내면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퍼졌고, 그 맛은 쌉싸래하면서도 묘하게 사람들의 입맛을 붙잡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차 대용의 풀’, 곧 차풀이라 불렀습니다.

옛 문헌 속 나


《향약집성방》은 나를 차명초(茶茗草)라 적었습니다.


몸의 열을 내려주고, 소변이 시원히 나오게 한다고 기록했지요. 《동의보감》에서는 나의 씨앗이 신장과 이뇨에 이롭다 하였고, 민간에서는 부종과 갈증을 풀어준다고 전해졌습니다.


겉으론 평범한 풀 같지만, 나는 오랫동안 사람 곁에서 약초이자 차로 쓰이며 작게나마 힘이 되어 왔습니다.

연인의 풀

내 꽃말은 ‘연인’입니다.


낮 동안 활짝 펼쳤던 잎들이 밤이 되면 서로 마주 보며 포개집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어깨를 기댄 채 서로를 끌어안는 것 같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내게 이름 대신 꽃말을 주었습니다.


나는 작은 풀에 불과하지만, 내 잎을 바라보는 이들이 잠시라도 따스한 사랑을 떠올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해를 살고, 다시 시작하는 삶


나는 한해살이풀.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꼬투리에 검고 반짝이는 씨앗을 남깁니다. 그리고 나의 한 생은 거기서 끝나지요.


하지만 나의 끝은 곧 시작입니다. 씨앗은 겨울을 건너 다시 흙을 헤집고 올라와 새로운 나로 자라납니다. 같은 자리, 다른 몸, 그러나 이어진 숨결로.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햇볕 가득한 화분 속에서도, 들판 한켠에서도, 나는 똑같은 호흡으로 하루를 엽니다.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쳐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 나를 발견해 이름을 불러주고, 차처럼 달여 마시며 마음을 쉬어간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기쁩니다.


혹시 당신도 산책길에서 나를 만나게 된다면, 잠시 멈춰 나를 바라봐 주세요.
나는 당신 곁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작지만 깊은 이야기를 품은 풀입니다.


https://youtu.be/zbuIT3rzCQE?si=cWBUyFlUB9LGh_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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