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탄생화
나는 한때 당신의 화단 한켠에서 키가 1미터도 넘게 자라며
햇살을 한껏 끌어안고 서 있던 스위트 바질이에요.
처음엔 작은 화분 속에 갇혀 있었죠.
마음은 크건만 몸은 좀처럼 자라지 못했어요.
당신이 나를 화단으로 옮겨 심어 준 날,
나는 비로소 뿌리를 깊이 뻗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바람은 내 잎을 스치며 향을 더 멀리 실어 나르기 시작했지요.
나의 작은 흰 꽃들이 소박히 피어날 때,
당신의 눈빛 속에서도 은은한 미소가 번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식탁에는 내가 자주 오르지 못했어요.
서양 요리를 즐기지 않는 당신에게
내 향긋함은 잠시의 호기심이었을 뿐이었죠.
그래도 나는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잎을 스치며 맡던 그 한 번의 숨결마다
나는 충분히 빛났으니까요.
나는 바질이라 불려요.
꿀풀과 식물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죠.
그 중에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을 품은 내가
‘스위트 바질(Ocimum basilicum)’.
수많은 바질 속에서도 식탁 위 가장 사랑받는 존재랍니다.
내 고향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먼 옛날 아유르베다 의학에서 약초로 쓰이던 나는
실크로드와 아라비아 상인들의 길을 따라
중동을 지나 지중해로 건너갔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람들은 나를 신성한 식물로 여겼고,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에는
토마토와 어우러져 이탈리아 부엌에서 빛나는 허브가 되었죠.
오늘날 피자와 파스타의 향기 속에 내 긴 여정이 스며 있습니다.
내 이야기는 전설과 함께 숨쉬고 있어요.
힌두 신화에서 나는 ‘툴시(Tulsi)’라 불리며 지금도 신성하게 모셔집니다.
툴시 여신이 사악한 신적 존재—즉 ‘악신(惡神)’—의 유혹을 거부하다
신의 분노로 허브로 변했을 때, 비슈누 신이 그녀의 순결을 알아보고
영원히 곁에 두기 위해 나를 신성한 식물로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도의 집집마다 툴시 화분이 놓여 있고
매일 아침 그 앞에서 기도가 이어지죠.
그리스 전승에서 나의 이름 ‘Basil’은 그리스어 basileus(왕)에서 왔어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리에서 내가 자라났다고 믿어
사람들은 나를 ‘왕의 식물’이라 부르며
성수를 만들 때 내 잎을 띄우는 전통을 지켰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이야기 속에서는
한 여인이 살해된 연인의 머리를 내 화분 속에 묻고
매일 그 화분을 돌보며 사랑을 간직했다지요.
이 비극은 영국 시인 존 키츠(John Keats)의
〈Isabella; or, The Pot of Basil〉에 담겼고,
화가 윌리엄 홀먼 헌트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는
‘바질 화분을 안은 이사벨라’라는 그림으로
눈물 젖은 사랑을 캔버스에 남겼습니다.
그 그림 속에서 내 잎은 그녀의 눈물로 더욱 푸르게 자라나지요.
내 잎에 깃든 리날룰(linalool)과 유제놀(eugenol)은
소화를 돕고, 몸을 지키는 항산화와 항염의 힘을 지녔습니다.
나를 차로 우려 마시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도 있지요.
하지만 나를 너무 많이 마시면 간이 지칠 수 있으니
허브티나 오일을 농축해 오래 마시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나의 꽃말은 ‘사랑의 좋은 소식’, ‘행복한 미래’.
화단에서 당신과 함께였던 그 날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당신이 내 잎을 살짝 스치며 맡던 그 향,
그 한순간의 숨결 속에
사랑과 추모, 오래된 전설이 함께 피어나고 있었음을—
오늘도 바람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고 싶습니다.
https://youtu.be/RErG46QhSOA?si=sLntiwc_sMQyBB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