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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장미-비밀의 향기를 품은 장미

10월 16일 탄생화

by 가야


나는, 이끼장미 – 비밀의 향기를 품은 오래된 장미


나는 이끼장미, 학명으로는 Rosa × centifolia ‘Muscosa’라고 불린다.
내 이름 속 작은 × 기호는 나의 출생을 말해 준다.


장미 속(屬) 안에서 서로 다른 종이 만나 태어난, 오래된 교잡(交雜)의 흔적.
백잎장미(Rosa × centifolia)의 품 안에서, 우연이 빚어낸 변이로
내 꽃받침에는 초록빛 이끼가 덮인 듯한 송진향의 털이 자라났다.


사람들은 그 낯선 질감을 사랑스러워하며 내게 ‘Muscosa’,
즉 ‘이끼를 입은 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은밀히 전하는 사랑의 언어


내 꽃말은 “사랑의 비밀”, “달콤한 속삭임”.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깊은 마음을 숨기듯
나의 이끼 속에는 진한 송진 향이 숨어 있다.


연인들이 내 향을 맡으며
“내 마음의 비밀을 전한다” 속삭이던
18세기 프랑스의 정원,
빅토리아 시대의 살롱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오래된 장미, 예술 속에 머물다


나는 단순한 정원의 꽃이 아니었다.


프랑스 화가 피에르-조제프 르두테(Pierre-Joseph Redouté)의 수채화 속,
나는 이끼와 장미의 경계를 허물며 고요히 피어 있었다.


르두테의 ‘Les Roses’ 시리즈에서
내 초록빛 꽃받침과 부드럽게 겹겹이 말린 꽃잎은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장미의 초상”으로 남았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들은
내 이름으로 은밀한 연정과 비밀스러운 열망을 노래했다.


사랑을 드러낼 수 없던 시대,
내 향은 그들의 시와 그림에서 비밀의 은유로 피어났다.

한국 땅에서도


내가 태어난 곳은 유럽이지만
지금은 한국의 몇몇 장미 애호가와 전문 농원의 정원에도
조심스레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끼장미”라 부르는 대부분의 꽃은
사실 채송화(Portulaca grandiflora),
영문 이름이 ‘moss rose’인 탓에 생긴 이름의 착각일 뿐.


진짜 이끼장미를 찾으려면
꼭 내 이름, Rosa × centifolia ‘Muscosa’를 확인해야 한다.

내 향기의 비밀


내 향은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고전 장미의 깊고 풍부한 달콤함.
프랑스 그라스의 향수 장인들이
지금도 사랑하는 바로 그 올드 로즈의 향기.


그리고 또 하나—
내 이끼 같은 꽃받침을 손끝으로 스칠 때
솔잎과 전나무 수지를 닮은 송진의 향이 은근히 피어난다.
달콤함과 수지향이 교차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오래 기억한다.


나는 오늘도 속삭인다.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소리 없이 간직하라.”
10월 16일, 나를 탄생화로 받은 당신의 하루에
나의 향이 조용히 스며들기를.
사랑의 비밀을 품은 이끼장미가,
가을 햇살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은은히 채우고 있다.


https://youtu.be/MCNr1eMUlCA?si=b78Dg6yd1EF5Mtx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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