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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의 손끝에서 태어난 포도이야기

10월 17일 탄생화

by 가야

10월 17일, 나는 포도 – 디오니소스의 숨결과 우리 땅의 붓끝에 맺힌 열매


나는 포도.
가을 햇살이 내 잎을 스칠 때마다, 나는 한 송이 송이 영근 빛을 품습니다.
햇볕이 쌓이고, 바람이 머물며,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내 속살은 더 진하고 달콤해지지요.

디오니소스가 내게 건넨 첫 숨결


오래전 그리스의 태양 아래, 나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그는 내 열매로 인간에게 축제를 선물했지요.


바쿠스의 축제에서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와인의 잔을 부딪히며
인생의 열정과 자유를 찬미했습니다.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화면 속에서도,
고흐의 흔들리는 노란빛 붓끝에서도
나는 언제나 디오니소스의 축복과 함께 있었습니다.


때로는 짙은 보랏빛으로, 때로는 황금의 빛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원한 뮤즈였지요.

신사임당《묵포도도(墨葡萄圖)》

우리 땅의 붓끝과 시 속에서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서양의 신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멀리 이 땅에서도 나는 오랜 세월 화폭과 시 속에 스며들었지요.

조선의 여류 화가 신사임당은 세밀한 먹선으로 내 송이를 담아냈습니다.
《묵포도도(墨葡萄圖)》에선 묵색의 번짐만으로도 포도의 싱그러움과 탐스러움이 살아납니다.


검은 먹으로 그린 내 송이는 담백한 선비의 마음을 품고,
동양적 여백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생명력을 드러내지요.


근대의 시인 서정주는 ‘포도’라는 시에서
한 알 한 알 맺힌 보랏빛을 “마음 깊이 숨어 있는 달콤한 그리움”으로 노래했고,


김춘수의 시 속에서도 포도송이는
가을 햇살과 함께 그리움과 풍요의 상징으로 빛났습니다.


문학과 회화 속에서 나는,
서양의 디오니소스가 주는 황홀과
동양의 담백한 운치,


그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기다림이 빚어내는 달콤함


나는 햇살을 오래 머금어야만 달콤해집니다.
조급함이 내 열매를 익힐 수는 없지요.


인생도 그러하듯,
당신의 인내가 언젠가 깊은 와인처럼
진한 결실로 돌아올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기울인 한 잔의 포도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신화와 시, 그림의 축복을 담은
하나의 예술이 되기를.


“당신의 하루가 풍요로움으로 물들기를.
그리고 그 풍요가 당신만의 예술이 되기를.”


https://youtu.be/7NayiIfxbOY?si=CnDC5eo3KVUbeT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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