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크렌베리와 넌출월귤 이야기

10월 18일 탄생화

by 가야

10월 18일 탄생화 – 나, 넌출월귤(蔓越橘 만월귤)


안녕하세요. 저는 넌출월귤입니다.
제 이름을 한자로 쓰면蔓越橘(만월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세 글자를 모두 한자음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첫 글자 蔓(만)만 토박이말 ‘넌출’(덩굴을 뜻하는 말)로 바꾸어
넌출월귤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한자 그대로라면 만월귤이 될 이름이
우리 식으로는 넌출월귤이 된 것이지요.


덩굴처럼 길게 뻗어 자라는 제 모습과도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월귤(越橘, 월귤)’이라는 단어도 흥미롭습니다.
越(월)은 ‘넘다’ 혹은 중국의 옛 지명 ‘월’을 뜻하고,
橘(귤)은 본래 감귤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붉은 열매’를 넓게 가리킵니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북방의 작은 붉은 베리류—오늘날 Vaccinium 속에 속하는
링곤베리나 빌베리—를 모두 越橘, 곧 ‘월귤’이라 불러왔습니다.


북미에서 온 저를 처음 본 중국 식물학자들은
이 토착 월귤류와 닮았다고,
덩굴을 뜻하는 蔓(만)을 앞에 붙여
‘덩굴로 자라는 월귤’이라는 뜻의 蔓越橘(만월귤)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 명칭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첫 글자만 토박이말 ‘넌출’로 읽어
오늘날의 ‘넌출월귤’이 된 것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 산야에 자생하던 토종 덩굴식물 같지요.


저 역시 처음엔 사람들이 저를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북미의 차가운 늪지에서 자라는 베리랍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부분의 분들께서는
저를 ‘넌출월귤’보다 ‘크랜베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고 계십니다.


그 까닭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아 산이나 들에서 직접 만나 보실 기회가 없고,
수입 주스·건조 과일·건강식품으로 먼저 소개될 때
포장과 광고가 모두 영어 이름 Cranberry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넌출월귤’은 발음이 길고 낯선 반면,
‘크랜베리’는 짧고 쉽게 입에 붙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서양에서의 이름은 전혀 다른 유래를 가집니다.
영어 cranberry는 꽃의 꽃턱 모양이 두루미(crane)의 부리를 닮았다 하여
crane(두루미)와 berry(열매)를 합친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제 덩굴과 친척 열매를,
서양에서는 새의 부리를 떠올리며 이름을 지었다니
한 열매가 두 대륙의 상상력을 이렇게 다르게 끌어낸 셈이지요.


저의 고향은 북미의 차가운 늪지,
미국 매사추세츠와 위스콘신,
캐나다 퀘벡과 뉴펀들랜드입니다.


서늘한 여름과 긴 겨울, 강산성 토양이 있어야만
건강히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가 달라 자연 상태로 자라기 어렵지만
건조 열매나 주스로는 누구나 쉽게 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북유럽에서는 제가 악령을 물리치는 붉은 열매로 전해졌습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저를 ‘생명의 피’라 부르며
치료와 제사의 귀한 재료로 삼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빨갛게 빛나는 크랜베리 소스가 빠지지 않는 것은
가족의 화합과 풍요를 기리는 오랜 전통이 이어져온 까닭입니다.


저는 작은 몸이지만 비타민 C와 안토시아닌을 가득 품고 있습니다.
면역력을 높이고 항산화 작용을 도우며
특히 프로안토시아니딘 성분은 요로 건강을 지켜준다고 알려져 있지요.


겨울에도 붉게 빛나는 제 열매가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과 건강을 전하는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도 이 붉은 빛에 매혹되었습니다.
19세기 미국 화가들의 추수감사절 정물화에는
수확의 기쁨을 상징하는 붉은 크랜베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가을 들판과 함께 그려진 제 모습은
풍요와 생명의 은유가 되었지요.


현대 사진가들은 하베스트 시즌,
늪지 위로 떠 있는 크랜베리 열매의 붉은 물결을
붓 대신 카메라로 담아내며
자연이 주는 색의 향연을 기록했습니다.

제 꽃말은 풍요와 건강입니다.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붉게 빛나는 저처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제 작은 붉은 빛이 여러분 마음에도 따스히 스며들길
저, 넌출월귤(蔓越橘 만월귤)이 조용히 기도합니다.


https://youtu.be/d0uHcOiQnws?si=-9EQL7IFu6aIwQ8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오니소스의 손끝에서 태어난 포도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