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탄생화
어느 노(老) 수필가의 글 속에서 당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나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정강이에 삼대를 대고, 손끝으로 문질러 실을 잇던 그 세월.
붉게 터진 손가락, 마른 바람 속에서 울리던 베틀 소리…
그 고통을 따라가며 당신은 한숨을 쉬었지요.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하고.
그 삼, 바로 나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대마(大麻)라 부르지요.
학명은 Cannabis sativa L., 영어로는 Hemp.
때로는 ‘삼’이라 부르며, 때로는 ‘마리화나’라 두려워합니다.
한쪽에서는 천 년 넘게 베틀에 실을 걸었고, 다른 쪽에서는 금기의 상징이 되었으니
나만큼 이중의 얼굴을 가진 식물도 드물 겁니다.
내 뿌리를 더듬으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농경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 고대 문헌 《이아(爾雅)》에는 이미 삼을 재배해 옷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지요.
불교에서는 등심을 밝히는 심지로, 고대 한반도에서는 집을 짓고 밧줄을 꼬는 데 빠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신의 선물이라 부르며 항해의 돛과 밧줄을 내 몸으로 엮었지요.
나는 바다와 길 위에서 인류의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내 작은 연녹색 꽃에는 화려함이 없지만,
땅과 바람 속에 스며 있는 이야기는 깊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을 입히고 먹이고, 때로는 병을 고쳐주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자유”, “치유”라는 꽃말을 주었습니다.
묶이면서도 풀어내는, 얽히면서도 치유하는 모순된 힘을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줄기는 삼베와 밧줄, 종이로 태어나고, 씨앗인 삼씨(麻子)는 단백질과 오메가 지방산이 풍부해
오랜 세월 건강식으로 사랑받았습니다.
또한 내 몸에서 추출되는 카나비디올(CBD)은 통증 완화와 진정 작용으로
오늘날 의료용으로 주목받고 있지요.
하지만, 내 안의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은 강한 환각을 일으켜
마리화나라는 이름으로 두려움과 규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과도한 사용은 중독, 인지 기능 저하, 정신적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나는 양날의 칼, 인간의 선택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해가 되기도 합니다.
화가들은 내 질긴 줄기와 바다를 건넌 돛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 황금기 화가들의 항해화 속에서, 거대한 범선의 하얀 돛은
내 몸에서 뽑은 실로 직조된 것이었지요.
동양에서는 담백한 삼베옷으로, 서양에서는 자유와 반문화의 상징으로
노래와 문학, 회화에 스며 있었습니다.
20세기 반문화 예술가들의 포스터와 음악 속에서도
나는 ‘자유’와 ‘저항’의 메타포로 불렸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인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붉어진 정강이, 수필가의 기억 속 베틀 소리,
그리고 오늘날의 실험실과 미술관까지—
나의 삶은 늘 인간의 삶과 얽혀 있었습니다.
때로는 금기, 때로는 생명.
나는 대마, 인간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온
자유와 치유의 식물입니다.
https://youtu.be/lUrz5QuyUUM?si=AdjGoX1zIBRUPD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