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탄생화
저는 해마다 강원도의 높은 산비탈에서 봄을 기다립니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뿌리에서 힘껏 새싹을 밀어 올리면, 산바람에 흔들리며 작은 은빛 털을 품은 잎이 차례차례 피어납니다. 사람들은 저를 곤드레, 혹은 본래 이름인 고려엉겅퀴(Cirsium setidens) 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옛 의서 『동의보감』에는 저를 “대계(大薊)·소계(小薊)”라 기록하며 지혈과 해독의 약성으로 전합니다. 그 시절에는 ‘곤드레’라는 이름이 없었을지라도, 제 강인한 생명력과 약초로서의 힘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은 제 어린잎을 봄나물로 따서 데치고 말렸습니다. 축 늘어진 잎 모양을 두고 “곤드레곤드레” 하며 부르던 방언이, 마침내 저의 새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 속에는 사람들의 눈길과 혀끝이 함께 스며 있습니다.
시인 유치환은 엉겅퀴를 “항가새꽃”이라 부르며 한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거친 땅에서 보랏빛 꽃을 피우는 엉겅퀴의 기개는 저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 시의 한 구절 속에서, 강원도의 바람 속에서, 같은 피를 나눈 사촌과 함께 강인한 생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은 흥겹게 〈곤드레 만드레〉를 부르며 제 이름을 노랫말로 삼았습니다. 제 향과 맛, 그리고 봄날의 취기를 사람들의 노래와 함께 기억하고 계십니다.
제 어린잎은 단백질·칼슘·철분이 풍부해 겨우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산의 선물입니다. 살짝 달큰하고 순한 향, 입안 가득 퍼지는 은은한 풀내음은 사람들의 밥상에 봄을 데려옵니다. 강원 정선의 부엌마다 전해 내려오는 곤드레밥—말린 잎을 불려 밥에 넣고 참기름과 간장 양념을 곁들이면, 제 향은 따뜻한 김과 함께 퍼져 나갑니다.
7월이 되면 줄기 끝에 보랏빛 꽃이 피어납니다. 가시가 달렸지만 쉽게 꺾이지 않는 저를 두고 사람들은 “소박한 사랑, 강인한 생명력”이라 꽃말을 붙였습니다. 험한 산지에서도 해마다 다시 일어서는 제 삶이 바로 그 의미이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10월 21일의 탄생화는 엉겅퀴(Cirsium japonicum) 입니다. 그러나 이미 며칠 전 탄생화에서도 엉겅퀴가 소개되었기에, 이번에는 그 사촌인 저, 곤드레(고려엉겅퀴) 가 이야기를 대신 전합니다. 같은 피를 나눈 엉겅퀴속의 식물이자, 사람들의 밥상과 삶 속에서 더욱 친근하게 기억되는 저를 통해—엉겅퀴가 가진 강인함과 봄의 은혜를 함께 느껴 주시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Qi7UB2nwyi0?si=a3YVkFMyM9scxN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