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가의 화살잎 벗풀(삼잎초)이야기

10월 22일 탄생화

by 가야

물가에 선 화살잎, 내가 벗풀입니다


나는 물가에 서 있습니다. 논두렁과 개울가, 연못의 가장자리, 사람이 살며 물을 길어다 쓰던 그 자리에 말없이 뿌리내리고 자라왔습니다. 누구도 내 이름을 크게 부르지 않았지요. 이름은 ‘벗풀’이라지만, 실은 그다지 벗처럼 친근히 여겨지지 않는 풀. 한국의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멀찍이 두고 바라보았습니다.

중국에서 내 덩이줄기는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 주었고, 붓기를 가라앉히고 열을 식히는 약으로도 쓰였습니다. 한방서에는 자고(慈姑)라 적혀, 자애로운 어머니가 베푸는 듯한 약효를 기록해 두었지요.

일본에서는 나를 쿠와이(くわい)라 부르며, 새해 아침 오세치 상 위에 올렸습니다. “싹이 튼다(芽が出る)”는 말과 같은 발음을 가진 내 괴경이, 한 해의 번영과 출세를 기원하는 길상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나는 오래도록 그저 물가의 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벼농사가 안정되었던 이 땅의 사람들에게, 구황식물로서의 나의 쓸모는 그리 절실하지 않았으니까요. 칡과 도토리,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감자와 고구마가 흉년을 견디는 식탁을 이미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내 이름에 담긴 ‘벗’이라는 두 글자는 어쩐지 역설처럼 느껴집니다. 벗이라 부르면서도, 진짜 벗이 되지는 못한 채, 사람과 한 발짝 떨어져 서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에도 두 가지 빛깔이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는 이름은 ‘벗풀’, 그러나 오래전 한의서나 고문헌 속에는 ‘삼잎초(三葉草)’라는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특징을 그대로 담아 붙인 한자 이름이지요. 그래서 학명 Sagittaria trifolia를 한글로 적을 때, ‘삼잎초’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같은 나를 두고도,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이 나란히 이어져 온 셈입니다.


나는 Sagittaria trifolia, 라틴어 sagitta, 화살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잎을 세 갈래로 뻗어 하늘을 겨누었습니다. 여름이 오면 수면 위로 하얀 세 장의 꽃잎을 펼치고, 가을이면 괴경 속에 햇살과 물의 기운을 저장해 겨울을 준비합니다. 내 꽃말은 ‘결의’, 그리고 ‘목표를 향한 추진력’. 화살이 과녁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듯, 나는 고요한 물가에서 묵묵히 결심을 세웁니다.

친근하지 않다 여겼던 이들이여, 언젠가 물가를 거닐다가 나를 마주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보세요. 벗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내 잎끝에 응축된 화살 한 자루의 의지를, 내 괴경 속에 깃든 생의 끈기를 느껴 주신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오래된 벗일 테니까요.


꽃말 : 결의, 목표를 향한 추진력
학명 : Sagittaria trifolia — 한글명 삼잎초(三葉草)
원산지 : 동아시아 – 중국, 한반도, 일본 및 동남아시아 습지


https://youtu.be/sVhCWSB2nY8?si=aUp81dBdk1S2p5if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려엉겅퀴(곤드레)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