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흰국화 이야기

10월 14일 탄생화

by 가야

나는 흰 국화입니다


가을 바람이 서늘히 불어오면, 나는 조용히 꽃잎을 열어 세상과 눈을 맞춥니다.


봄의 화려함도, 여름의 열정도 지나간 자리.
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계절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내 빛을 드러내는 것이 나의 길이니까요.

내 하얀 꽃잎은 오래전부터 순수와 성결을 상징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마음이 맑은 꽃’이라 부르며,
한 점 흐림 없는 빛 속에서 변치 않는 진심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도 그 한마디,
마음의 빛을 잃지 않으려는 그 고요한 의지입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나를 따며
속세를 떠난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나는 은거와 청정의 표정이 되었고,
조선의 화가들은 수묵의 여백 속에 내 고요한 자태를 담아
가을의 절개와 청렴을 그려냈지요.


멀리 서쪽에서도 나는 다른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정원에서,
나는 진실된 우정과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초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내 안에서
추모와 영원의 빛을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만성절에는 수많은 묘지가
나의 흰 얼굴로 가득 채워집니다.


클로드 모네의 화폭에도, 늦가을의 부드러운 빛 속에

나의 순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나를 조화, 곧 애도의 꽃으로 택했을까요?


아마도 가을에 늦게 피어
생과 사의 경계를 닮은 나의 계절감 때문일 것입니다.


또 흰색이 지닌 순수와 영혼의 평화를 향한 기도 때문일 테지요.


무엇보다 내 꽃잎은 쉽게 시들지 않아
오랫동안 곁을 지킬 수 있으니,


사람들이 떠난 이들을 기리며

내게 마지막 인사를 맡긴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나는 단지 바라만 보는 꽃이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나를 차와 약재로도 끌어안았습니다.


뜨거운 물 속에서 은은히 번지는 내 향은
눈의 피로를 풀고, 열을 내려 주며,
몸과 마음의 번민을 잠시 식혀 주었지요.


가을 저녁, 내 꽃차 한 잔 속에서
사람들은 잠깐의 고요와 위안을 얻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서 있습니다.


화려한 빛은 없지만,
시간을 견디며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순수한 마음,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것을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이 한 가지입니다.


가을 햇살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 속에
그 마음이 잠시 머물기를,
나는 오늘도 잎새 하나하나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NzOHmincLrg?si=Yn4ninjS5Fnk2Bu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팝나무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