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술 작품 속 매화이야기

10월 24일 탄생화

by 가야

저는 매화(梅花, Prunus mume)입니다.


10월 24일의 탄생화가 바로 저라는 사실, 조금 의외로 들리실 수도 있겠지요?
보통 제 계절은 한겨울의 설중(雪中)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오늘은 굳이 이 늦가을에 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매화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꽃말이 ‘고결·인내·희망’이라는 사실,
그리고 제 열매인 매실이 예로부터 건강을 지켜 온 귀한 열매라는 점—
그런 것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테지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수많은 예술작품 속에서 제가 어떻게 노래되어 왔는지,
그 속의 ‘나’, 매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를 가장 사랑해 준 이들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시인과 문인들이었습니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 임포(林逋, Lín Bū, 967–1028)는 저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그의 대표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한가한 산원에 매화가 스스로 피어, 그 향기 먼 곳까지 번지네.”
은둔자의 고결한 삶을 저를 통해 노래한 이 시는 오늘날까지도 저의 절개를 가장 잘 표현한 글로 전해집니다.


또한 같은 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 왕안석(王安石, Wáng Ānshí, 1021–1086) 선생은 저를 이렇게 읊으셨습니다.


“벽 모퉁이 몇 송이 매화가 차가운 눈 속에서 고개를 드네.”
차가운 눈 속에서 당당히 피어나는 제 모습을 인내와 절개의 상징으로 그려 주신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문인들이 저를 벗 삼아 노래해 주셨습니다.


조선의 시인 정철(鄭澈, Jeong Cheol, 1536–1593) 선생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봄을 알리는 꽃으로 저를 그려 주셨고, 선비들은 저를 ‘학문하는 이의 벗’이라 부르며 매화를 통해 스스로의 기개와 학문적 고결함을 담아내셨습니다.


특히 박인로(朴仁老, Park In-ro, 1561–1642) 선생의 시조에는 눈 속에서 피어나는 저의 강인함이 곧 선비의 절개와 같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벚꽃보다 먼저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헤이안(平安) 시대의 대표 시인 오토모노 타바토(大伴旅人, Ōtomo no Tabito, 665–731)
고전 시집 《만엽집(万葉集, Man’yōshū)》 속에서 저를 귀족적 세련됨과 봄의 기운으로 찬미하셨습니다.
그의 시들은 오늘날에도 매화를 노래한 와카(和歌)의 대표로 손꼽히고 있지요.

저는 유럽의 들판에 자생하지는 않지만, 19세기 유럽 예술가들은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 판화를 통해 제 자태를 알게 되셨습니다.


프랑스 화가들과 인상파 예술가들에게 저는 동양적 정취를 상징하는 꽃이었고, 그 가운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일본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Utagawa Hiroshige, 1797–1858)의 「가메이도 매화정원(亀戸梅屋舗)」을 모사하며 동양의 봄을 전하는 저의 모습을 서양의 화폭에 담으셨습니다.

지금은 사시사철 꽃이 피고, 아파트 생활 속에서 저를 귀히 대하는 이들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요.
하지만 봄이 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 매화꽃을 보러 모여듭니다.


제 열매인 매실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옛날 고고한 선비들의 사랑을 받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답니다.


그래도 저는 눈보라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절개로 피어나는 매화입니다.

겨울이 깊어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 오래된 약속을 오늘도 조용히 여러분께 전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agqHIb4GNiw?si=XKucQ0cfmxZxB5X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달빛 아래 핀, 흰독말풀(다투라)의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