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탄생화
저는 들녘과 산자락을 따라
사람들이 흔히 들장미라고 부르는 찔레꽃(Rosa multiflora)입니다.
유럽의 들장미, 곧 개장미(Rosa canina)와는 닮은 듯 다릅니다.
그곳의 들장미는 연분홍빛 꽃을 피우고 주황빛 로즈힙을 주렁주렁 달지만,
저는 하얀 꽃잎과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작은 붉은 열매―
우리식 로즈힙을 지니고 있지요.
이름만 닮았을 뿐, 꽃빛과 풍경, 향기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초여름이 다가오면
가느다란 줄기마다 잔가시를 빽빽이 품은 제 가지 위로
맑고 순백의 꽃이 한꺼번에 피어납니다.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며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함께한 여러분의 어린 날 추억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부드럽게 돋아난 통통한 찔레순을 살짝 꺾어
껍질을 벗겨 드시던 그 순간―
처음엔 살짝 쌉싸름하고 이내 달큰하게 번져오던 맛.
그 맛은 한 세대를 건너도 잊히지 않는
유년의 작은 선물이었지요.
세월이 흘러
가수 장사익 선생님의 노래 〈찔레꽃〉이 세상에 울려 퍼졌을 때,
저는 그 음성 속에서 다시 한 번 피어났습니다.
그분의 애틋한 목소리는
제 향기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움과 사랑으로 물들이지요.
저는 이 땅에서만 사랑받은 것이 아닙니다.
중국 시인들은 달빛 아래 피어난 저의 모습을
은은한 향과 함께 시에 담았고,
유럽의 화가들은 들장미와 저를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그렸습니다.
한국의 현대 시인들 역시
가느다란 줄기와 강인한 생명력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며 제 이야기를 노래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붙여준 꽃말이지요.
저의 꽃말은 “고귀한 사랑”, “순수한 마음”, “그리움”입니다.
가시를 품고 있으면서도 하얗게 피어나는 제 모습에서
사람들은 강인함과 동시에 맑고 깊은 사랑을 읽어낸 것이겠지요.
저는 단순한 야생화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추억, 음악이 불러낸 그리움,
그리고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이어져 온 예술적 영감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꽃입니다.
올해도 초여름이 다가오면, 저는 다시 하얗게 피어나 조용히 속삭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그때 그 쌉싸름하고 달큰하던 찔레순의 맛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기억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가
여러분 마음에도 작은 향기로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_TBUPaG9vwY?si=7WYTo_NePjQTgD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