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의 탄생화
저는 무궁화입니다.
장마가 길게 이어져도 저는 멈추지 않고 꽃을 피웁니다.
굵은 빗줄기 사이로 피고 또 피며, 비가 그치면 다시 햇살을 받아 꽃잎을 펼치지요.
한 송이가 하루 만에 시들어도, 다음 날이면 새로운 꽃이 어김없이 피어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 모습이 바로 제 이름, ‘무궁화(無窮花)’—끝이 없는 꽃의 뜻이지요.
일제강점기에는 저를 깎아내리려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진딧물이 많아 지저분하다.”는 말까지 들었지요.
하지만 사실 장미가 저보다 진딧물이 훨씬 많습니다.
저는 장미보다 훨씬 병충해에 강하고, 매일 새 꽃을 피우는 힘을 지녔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 제 강인함이 두려웠던 이들이 저를 낮추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저는 늘 백성들의 곁에서 희망을 품은 꽃이었습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 이화(배꽃)였던 시절에도
백성들은 저를 마음속의 ‘나라꽃’으로 불러 주었지요.
근대 개화기에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꽃으로 다시 주목받으며,
1949년 「국기법」에 태극기와 함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명기되었습니다.
법으로 ‘국화(國花)’를 따로 지정한 적은 없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민에게 저는 사실상의 나라꽃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인들은 저를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노래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피고 또 피었습니다.”
— 윤동주, 〈무궁화〉(미발표 유고)
짧은 시지만,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한 마음이 절절히 배어 있습니다.
또 다른 시인 김소월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무궁화는 우리 마음,
한결같이 피고 또 핀다.”
— 김소월, 〈무궁화〉(1923)
민족의 끈기를 담백하게 노래한 이 시구는
오늘날에도 저의 생명력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부르는 애국가 1절에서 이렇게 노래하지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민국 애국가 1절
이 한 구절만으로도 저는 지금도 국민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세계의 나라꽃들도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화(菊花), 프랑스의 아이리스, 영국의 장미, 캐나다의 단풍나무처럼
한 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담은 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끊임없는 피어남’으로 한국인의 강인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지요.
제 이름을 들으면 많은 분이 ‘히비스커스 차’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히비스커스 차는 열대 아프리카 원산의 로젤(Hibiscus sabdariffa)로 만든 허브티지요.
안토시아닌과 비타민 C가 풍부해 항산화, 혈압 조절,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지만
산도가 높아 위가 약한 분이나 임산부, 저혈압 환자는 하루 1~2잔만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저, Hibiscus syriacus는 로젤과는 전혀 다른 종입니다.
옛 한의서에 뿌리·껍질을 지혈·해독 용도로 달여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꽃잎을 허브티처럼 즐기는 문화는 거의 없고 맛과 향도 미미합니다.
최근 일부 농가에서 무궁화 꽃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로젤 차의 새콤한 풍미와 강한 안토시아닌 함량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10월 28일에 태어난 분들께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신의 마음이
세상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피어나는 무궁화처럼, 당신의 꿈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https://youtu.be/4gOC-BEkIP4?si=0VjNUnTpnV1sS8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