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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이야기

10월 29일 탄생화

by 가야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그 노래의 첫마디가 들릴 때마다 저는 한여름 파도 속에서 깨어납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그 멜로디가, 마치 제 이름을 부르듯
바다 위로 고요히 퍼져오지요.

저는 해당화, 바다를 고향으로 삼은 꽃.


거친 바닷바람과 염분 속에서도
짙은 분홍빛 꽃을 크게 피우는 Rosa rugosa랍니다.


가시가 장미보다 더 굵고 억세지만,
그것은 바닷가 모래언덕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오랜 세월 제게 주어진 갑옷 같은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게 “이끄시는 대로”, “온화”,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주었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며도
부드럽게 향기를 퍼뜨리는 제 모습에서


그들은 운명에 순응하는 지혜를,
그리고 바다처럼 포근한 마음을 본 것이겠지요.

오래 전부터 많은 전설이 제 주위를 맴돌았어요.


바닷가 오누이가 생이별한 뒤
동생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제가 피어났다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바닷가에 홀로 남은 여인의 눈물이
저를 붉게 물들였다는 슬픈 설화,


양귀비가 “해당화의 잠이 아직 깨지 않았다”고 속삭였다는
황궁의 이야기도 있지요.


모두가 기다림과 애잔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문학 속에서도 저는 수없이 피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마지막 장면에서 서희가 해방의 소식을 들으며 제 가지를 움켜쥐었을 때,


만해 한용운 시 〈해당화〉에서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라 노래할 때,


정읍의 민요 “명사십리 해당화야 네 꽃진다 설워마라”가 바람 따라 흘러갈 때마다, 저는 그리움과 희망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했지요.


저의 몸에는 바다의 선물이 스며 있습니다.


비타민 C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꽃잎과 열매는 오래전부터 차와 약재로, 지금은 피부를 맑게 하고 진정시키는 화장품 원료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거친 바람을 견디며 스스로를 지켜 온 제 힘이 사람들의 피부를 보살피는 성분으로 전해진 것이겠지요.


비록 지금은 화단이 아닌 해안 모래밭에서 파도와 함께 살고 있지만, 저를 떠올리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저는 늘 그 노래처럼 살아 있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그 한 줄이 불릴 때면 저는 다시 향기를 퍼뜨리며 속삭입니다.

가시를 다닥다닥 달고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 삶,


이끄시는 대로 흔들리면서도
그리움과 사랑을 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제가 들려주고 싶은
저 해당화의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Hy1urDrQuzw?si=wPIlD9ViiIEOGi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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