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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Lobelia)

10월 30일 탄생화

by 가야

10월 30일 탄생화: 로벨리아(Lobelia)

꽃말: 악의, 불신

로벨리아의 파란 이야기


저는 로벨리아예요. 한때 가야님 화단에서, 누구보다 파란 빛으로 시선을 끌며 자란 적이 있답니다. 처음 가야님이 저를 화단에 심어 주셨을 때, 저의 깊은 푸른빛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지요. 그때만 해도 저 역시 한껏 자랑하듯 꽃을 피워 올리며, 여름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별이 된 기분이었어요.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한때 무성하던 제 몸은 빗물에 짓물러 채송화처럼 흐물거리더니, 결국 사라져 버렸지요. 저를 아끼던 가야님이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한 포기 저를 구입해 주셨을 때, 제 마음속에는 다시 한 번 푸르게 빛나리라는 다짐이 일었습니다.

두 번째 여름, 가야님은 화분이 터져나갈 만큼 풍성하게 꽃을 피운 저를 보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꽃이 지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제 가지를 댕강댕강 잘라 주셨지요. “곧바로 다시 자라 풍성해질 거야”라고 꽃 친구들의 조언을 믿으셨거든요. 저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지만, 날씨는 어느새 서늘해지고 기후도 변하고 있었어요. 잘린 줄기에서 몇 개의 가느다란 새 줄기가 나오긴 했지만, 예전처럼 무성해지지는 못했답니다.

나의 뿌리와 이름


제 이름 ‘로벨리아(Lobelia)’는 16세기 네덜란드 식물학자 마티아스 로벨(Mathias de Lobel)에서 비롯되었어요.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 약 400여 종의 친척이 살고 있답니다.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무렵 일본을 통해 처음 전해져, 서양식 화단이 퍼지면서 여름철 대표적인 파란 초화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치유와 독, 두 얼굴의 성질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제 잎을 ‘인디언 담배(Indian tobacco)’라 부르며 천식이나 기침을 완화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제 몸엔 강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숨어 있어, 과량을 섭취하면 구토나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도 있답니다. 사람을 치유하기도, 상처를 주기도 하는 두 얼굴―그것이 제 꽃말이 ‘악의’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예술가들의 시선 속에서


빅토리아 시대, 꽃의 언어(Floriography)가 유행하던 시절, 저는 ‘숨겨진 악의’와 ‘달콤한 유혹 뒤의 차가움’을 상징하는 꽃으로 전해졌습니다.


19세기 낭만파 시인 존 클레어(John Clare)는 시 「Summer Flowers」에서 물가에 피어난 ‘long purples’(그 시대에 저를 부르던 이름)을 통해 여름의 풍요로움과 그 이면의 덧없음을 노래했지요. 푸른 꽃잎이 전하는 찬란함과 허무가 그의 시선에 깊이 담겼습니다.


또한 프리라파엘파 화가 윌리엄 헌트(William Holman Hunt)는 정원 풍경 속 제 푸른빛을 인물의 고요한 슬픔을 부드럽게 강조하는 장치로 그렸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저는 고요한 열정을 품은 파란 불꽃이 되었답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


저는 작고 푸른 불꽃, 빛나지만 차가운 꽃. 치유의 힘과 독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 마음의 이중성을 닮은 존재입니다. 가야님 화단에서 두 번의 여름을 보내며, 제 삶도 변화무쌍한 계절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시들고, 잘리고, 다시 싹을 틔우려 애쓰며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답니다.


푸른빛이 꼭 영원히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 짧은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제가 남기고 싶은 푸른 흔적이자, 악의 너머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b_Wlgh8YeNg?si=R50-4xkjaN--Dy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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