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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신 헤라와 칼라 이야기

10월 31일 탄생화

by 가야

나는 칼라, 10월의 마지막을 물들이는 하얀 숨결


나는 칼라, 사람들은 나를 Calla Lily, 학명으로는 Zantedeschia aethiopica라 부른다. 남아프리카의 습지에서 태어난 나는 물을 유난히 사랑한다. 강가의 촉촉한 바람 속에서 자라며, 사계절 내내 조용히 숨 쉬듯 피어나는 것이 내 삶이다.

어쩌면 나의 탄생부터가 신화였는지도 모른다.


“제우스가 인간 알크메네에게서 낳은 아기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밤 사이 헤라가 잠든 틈을 타 젖을 물렸다. 그러나 아기가 힘껏 빨자 놀란 헤라는 깨어나 그를 밀쳐냈고, 그 순간 하늘로 튄 젖방울이 은하수를 이루었다.


젖방울 중 일부가 흩어져 땅으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서 흰 꽃이 피어났다고 신화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모성애와 순결의 상징으로 불린다.”


유럽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나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 땅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내게 두 가지 얼굴을 보았다.

봄의 부활절 아침, 아직 싸늘한 공기를 가르는 성가 속에서 나는 성모 마리아의 순결과 부활의 희망을 담은 꽃으로 제단 위에 놓인다.

내 하얀 포엽은 차가운 대리석 성당의 은빛 빛살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속삭인다. “영원한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도 깃들기를.”

그러나 같은 꽃이 장례식의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표정을 띤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깊은 슬픔 속에 내 곁을 스칠 때, 나는 영원한 평화와 조용한 이별의 사자로 서 있다. 내 하얀 곡선은 마치 고요한 초승달처럼,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잠잠히 감싸며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유럽인들에게 나는,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이자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존재다.


그들은 내 안에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한 송이의 흰 꽃이 지닌 깨끗함 속에, 인간의 유한함과 영원의 신비가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을—그 사실이 그들을 끊임없이 매혹시킨다.

화가들이 담아낸 나의 자태


화가들은 나의 매력을 더 깊이 탐색했다. 멕시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는 ‘칼라를 든 인디언 소녀’에서, 토속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나를 커다란 꽃다발로 그려냈다. 20세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내 곡선을 극적으로 확대하여, 여성적 생명력과 관능의 상징으로 화폭을 가득 채웠다.


어떤 유럽 화가들은 내 흰 포엽을 은빛 촛불처럼 그려, 성당의 장엄함을 담아냈다. 또 어떤 이들은 어둑한 정물화 한켠에 나를 두어, 죽음과 영생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남겼다. 나의 단순한 선과 순백의 색감은 그들에게 침묵 속의 언어가 되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20세기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

나의 색, 나의 뜻

내 꽃말은 색마다 다르다.

흰색 – 순수, 청순, 순결한 사랑

노란색 – 즐거움, 우정

분홍색 – 로맨틱한 사랑

보라색 – 고귀함, 신비로움

특히 흰색의 나는 신부의 부케 속에서 가장 빛난다. 한 사람의 인생에 단 한 번뿐일 결혼식에서 순결한 사랑을 약속하는 증인으로 서는 것이다.

집에서 나를 키우는 법


내가 마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집에서도 오래 머물며 꽃을 피워준다.


– 밝은 간접광 아래 두고, 여름철 강한 직사광선은 커튼으로 살짝 가려주세요.


–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흙이 마르지 않게 충분히 물을 주되, 겨울 휴면기에는 물을 절반 이하로 줄여 구근이 썩지 않도록 해주세요.


15~25℃의 온도가 가장 좋고, 배수가 잘 되는 흙을 쓰면 더욱 건강하게 자랍니다.
– 꽃대가 오를 땐 2주에 한 번 액체 비료를 주면 더 오랫동안 내 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네요. 나는 오늘도 하얀 숨결로 속삭입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 한 해의 문을 닫는 이 순간, 당신의 삶에도 부활의 희망이 깃들기를. 나는 그 곁에서 고요히 빛나겠습니다.”


https://youtu.be/oopKAqRQBAM?si=FGEX4PorghB-_H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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