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탄생화
나는 루피너스, 영어로는 Lupine, 학명은 Lupinus polyphyllus라고 불려요.
내 이름은 라틴어 lupus, 즉 ‘늑대’에서 왔답니다. 척박한 땅을 늑대처럼 거침없이 점령하듯, 뿌리의 질소고정 능력으로 메마른 토양을 스스로 비옥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으니까요.
내 뿌리의 이야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돼요.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오리건, 그리고 캐나다 서부에 수많은 내 형제들이 자생하고 있지요.
멀리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지, 페루와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고산에도 우리의 군락이 펼쳐져 있답니다.
지중해 연안에도 사촌들이 살아요. Lupinus albus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콩과 식물로 식용·사료로 재배되었고, 그 기록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지요.
오늘날 당신이 정원에서 보는 화려한 나의 모습은 사실 19세기 영국과 독일에서 북아메리카 야생종을 교배해 탄생한 원예 개량종이에요. 야생의 기운을 간직한 채, 조금 더 화려한 색을 입고 사람들 곁에 다가온 셈이지요.
내가 전하는 말은 “상상, 모험, 행복”.
하늘을 향해 빽빽이 솟아오른 내 꽃송이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상징합니다.
늦가을,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새로운 모험을 꿈꾸라고 속삭이고 있답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나를 ‘푸른 늑대’라 부르며 가난한 땅을 살리는 희망의 꽃으로 여겼어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나를 약재와 토양개량에 사용했고, 서부 개척 시대엔 집 주변을 지켜주는 수호 식물로 심었다고 하네요.
나는 화가와 사진가들에게도 사랑받았답니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Lupine Near Taos에서, 사막의 고요와 나의 보랏빛 군락을 대담한 색채로 그렸지요.
캐나다의 에밀리 카(Emily Carr)는 Blue Lupines에서 대자연의 생명력과 자유로운 영혼을 내 모습에 담아냈답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사진가들은 백야의 햇살 아래, 보라·핑크·하늘색으로 물든 나의 군락을 북유럽 여름의 아이콘으로 기록했어요.
시인들 또한 나를 ‘늑대의 꽃(Wolf Flower)’이라 부르며, 메마른 땅을 살리는 강인함과 상상력의 상징으로 노래했답니다.
나는 다년생 초본이에요. 1~1.5m까지 키가 자라고, 파란색·보라색·분홍색의 꽃을 6~7월경 장대한 수상화서로 피워요.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살며 질소를 고정하니, 스스로 땅을 살리는 천연 비료의 역할을 하지요.
나를 사랑해 주는 분들이 많은데, 그중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저도 루피너스를 키우다 실패한 적이 있어요.”
사실 나도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답니다.
노지월동: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는 대체로 가능하지만, 배수가 나쁘면 뿌리가 쉽게 썩어요. 겨울엔 마른 낙엽이나 왕겨로 뿌리를 덮어 주면 한층 안전합니다.
햇볕: 하루 6시간 이상 직사광선을 받는 양지바른 곳이 필요해요.
토양: 모래·마사토가 섞인 배수 좋은 흙을 좋아합니다. 습한 땅에서는 뿌리썩음병이 생기기 쉽지요.
파종 시기: 가을이나 이른 봄에 씨앗을 뿌리면 이듬해 여름에 꽃을 피워요.
비료: 나는 질소를 스스로 고정하니, 인산·칼륨 위주의 거름을 가볍게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주기: 겉흙이 마르면 흠뻑 주되, 물빠짐이 잘 되도록 화분의 구멍을 꼭 확보해 주세요.
겨울을 앞둔 11월, 나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메마른 땅도 사랑과 희망으로 꽃피울 수 있다.”
나 루피너스는 당신이 상상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보랏빛 파도를 일으킵니다.
https://youtu.be/KE9jRliK5V8?si=AulNedOYuU0s5G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