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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너스의 이야기

11월 2일 탄생화

by 가야

11월 2일 탄생화, 나 루피너스의 이야기


나는 루피너스, 영어로는 Lupine, 학명은 Lupinus polyphyllus라고 불려요.
내 이름은 라틴어 lupus, 즉 ‘늑대’에서 왔답니다. 척박한 땅을 늑대처럼 거침없이 점령하듯, 뿌리의 질소고정 능력으로 메마른 토양을 스스로 비옥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으니까요.

◆ 나의 고향

내 뿌리의 이야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돼요.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오리건, 그리고 캐나다 서부에 수많은 내 형제들이 자생하고 있지요.

멀리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지, 페루와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고산에도 우리의 군락이 펼쳐져 있답니다.

지중해 연안에도 사촌들이 살아요. Lupinus albus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콩과 식물로 식용·사료로 재배되었고, 그 기록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지요.


오늘날 당신이 정원에서 보는 화려한 나의 모습은 사실 19세기 영국과 독일에서 북아메리카 야생종을 교배해 탄생한 원예 개량종이에요. 야생의 기운을 간직한 채, 조금 더 화려한 색을 입고 사람들 곁에 다가온 셈이지요.

◆ 나의 꽃말

내가 전하는 말은 “상상, 모험, 행복”.
하늘을 향해 빽빽이 솟아오른 내 꽃송이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상징합니다.
늦가을,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새로운 모험을 꿈꾸라고 속삭이고 있답니다.

✨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나를 ‘푸른 늑대’라 부르며 가난한 땅을 살리는 희망의 꽃으로 여겼어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나를 약재와 토양개량에 사용했고, 서부 개척 시대엔 집 주변을 지켜주는 수호 식물로 심었다고 하네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Lupine Near Taos

◆ 예술 작품 속의 나

나는 화가와 사진가들에게도 사랑받았답니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Lupine Near Taos에서, 사막의 고요와 나의 보랏빛 군락을 대담한 색채로 그렸지요.

캐나다의 에밀리 카(Emily Carr)는 Blue Lupines에서 대자연의 생명력과 자유로운 영혼을 내 모습에 담아냈답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사진가들은 백야의 햇살 아래, 보라·핑크·하늘색으로 물든 나의 군락을 북유럽 여름의 아이콘으로 기록했어요.


시인들 또한 나를 ‘늑대의 꽃(Wolf Flower)’이라 부르며, 메마른 땅을 살리는 강인함과 상상력의 상징으로 노래했답니다.

◆ 나의 삶과 비밀

나는 다년생 초본이에요. 1~1.5m까지 키가 자라고, 파란색·보라색·분홍색의 꽃을 6~7월경 장대한 수상화서로 피워요.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살며 질소를 고정하니, 스스로 땅을 살리는 천연 비료의 역할을 하지요.

❄️ 노지월동과 잘 자라는 법

나를 사랑해 주는 분들이 많은데, 그중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저도 루피너스를 키우다 실패한 적이 있어요.”


사실 나도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답니다.

노지월동: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는 대체로 가능하지만, 배수가 나쁘면 뿌리가 쉽게 썩어요. 겨울엔 마른 낙엽이나 왕겨로 뿌리를 덮어 주면 한층 안전합니다.

햇볕: 하루 6시간 이상 직사광선을 받는 양지바른 곳이 필요해요.

토양: 모래·마사토가 섞인 배수 좋은 흙을 좋아합니다. 습한 땅에서는 뿌리썩음병이 생기기 쉽지요.

파종 시기: 가을이나 이른 봄에 씨앗을 뿌리면 이듬해 여름에 꽃을 피워요.

비료: 나는 질소를 스스로 고정하니, 인산·칼륨 위주의 거름을 가볍게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주기: 겉흙이 마르면 흠뻑 주되, 물빠짐이 잘 되도록 화분의 구멍을 꼭 확보해 주세요.

◆ 11월의 메시지

겨울을 앞둔 11월, 나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메마른 땅도 사랑과 희망으로 꽃피울 수 있다.”


나 루피너스는 당신이 상상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보랏빛 파도를 일으킵니다.


https://youtu.be/KE9jRliK5V8?si=AulNedOYuU0s5G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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