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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오니아가 드리는 이야기

11월 3일 탄생화

by 가야

11월 3일 탄생화, 저 브리오니아가 드리는 이야기

— 꽃말: 거절


안녕하세요. 저는 브리오니아(Bryonia), 유럽과 서아시아 숲 속에서 태어난 덩굴 식물입니다. 늦가을, 나뭇가지 사이로 루비빛 열매를 반짝이며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뿌리와 고향


저는 박과(Cucurbitaceae)에 속하는 덩굴성 다년생 식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오이나 호박과 먼 사촌이지만, 식탁 위의 푸근한 친척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답니다. 여름에는 작은 흰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하트 모양의 잎과 가느다란 덩굴손으로 숲 속을 유유히 타고 오르지요.

아름답지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


제 열매가 아무리 탐스럽게 빛나도, 섣불리 입에 가져가면 큰일 납니다. 제 뿌리와 열매에는 쿠쿠르비타신(cucurbitacin)이라는 독성이 숨어 있어 강한 자극과 구토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 민간에서 약으로 쓰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섭취를 금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모습에 마음이 끌리더라도, 한 걸음 물러서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설이 깃든 나의 이름


저는 예로부터 주술적·신화적 식물로 전해 내려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제 뿌리는 마녀의 지팡이라 불리며,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치유와 죽음의 경계에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와 마녀들은 제 뿌리를 ‘마녀의 달걀’이라 불렀습니다. 갈라진 뿌리가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악령을 막거나 비밀 의식을 행할 때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두려움과 경외, 그 양가의 감정을 제 안에서 발견했을 것입니다.

예술 속에서 빛나는 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저는 꽃말 ‘거절’로 알려졌습니다. 누군가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는 마음을 전할 때, 연애 편지 속에 저를 그려 넣곤 했습니다.


영국 시인 존 클레어(John Clare)는 제 붉은 열매를 늦가을 숲의 ‘위험한 매혹’으로 노래했고, 프랑스 화가 피에르 조제프 르두테(Pierre-Joseph Redouté)는 섬세한 수채화 속에 저의 하트 모양 잎과 붉은 열매를 담아냈습니다. 위험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저의 매력을 세상에 전해 준 셈이지요.


현대 판타지 소설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금지된 약초이자 마법의 덩굴로 등장하며, 신비롭고 어둡게 빛나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말


11월 3일의 탄생화로서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때로는 거절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상대를 위해, 단호히 선을 긋는 용기—그것이야말로 제가 가진 붉은 열매보다 더 빛나는 가치일 것입니다.


오늘, 저 브리오니아가 여러분께 속삭입니다.
가까이 다가오되, 저의 경고를 기억해 주세요.


https://youtu.be/Df70qnLC87c?si=EneOUueGtwuoVB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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