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탄생화
나는 단양쑥부쟁이,
남한강 바람을 벗 삼아 살아온 작은 야생화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면 이렇게 묻곤 하지요.
“쑥부쟁이는 알겠는데, 왜 단양이라는 지명이 붙었을까?”
그 물음 속에는 나의 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본래 나는 남한강 여주에서 제천까지,
강가 자갈밭과 모래땅에 널리 퍼져 있던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천 개발과 댐 건설이 이어지면서
나의 고향은 차츰 사라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단양 일대에서만 나는 끝내 살아남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내 이름에 단양을 붙여 불렀습니다.
이제는 ‘단양쑥부쟁이’라 불리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내 이름 속에는
‘사라진 것들, 그러나 남아 끝내 지켜낸 것들’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나는 쑥부쟁이의 한 갈래입니다.
쑥부쟁이의 이름은, 어린 잎이 쑥과 닮아 붙은 ‘쑥’과
국화류 풀꽃을 뜻하는 옛말 ‘부쟁이’가 합쳐진 것이라 전해집니다.
또 이런 전설도 있습니다.
옛날 산골 마을에 동생들을 위해 늘 쑥을 캐던 처녀가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라 불렀고,
그 애칭이 세월을 지나 ‘쑥부쟁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쑥부쟁이, 그리고 나의 꽃말은
언제나 그리움과 기다림입니다.
나는 한국 특산식물이지만,
쑥부쟁이의 친척들은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부 등에도 자랍니다.
동북아시아의 숲과 산자락, 강가에서
내 형제들은 저마다 보랏빛 얼굴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내겐 조금 다른 사연이 있지요.
나는 단양이라는 지역과 운명을 함께 하며
특별한 이름으로 남겨졌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한국의 자연과 환경이 길러낸
고유성과 다양성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직 내 이름이 직접 문학이나 그림에 등장한 적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을을 노래한 시구나
보랏빛 들꽃을 담은 수채화 속에는
늘 쑥부쟁이의 숨결이 있습니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의 붓끝, 누군가의 시 한 구절에서
‘단양쑥부쟁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지길 꿈꿉니다.
작지만 희귀한 내 삶이
예술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보존의 길이 될 테니까요.
나의 꽃말은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에 ‘공훈(功勳)’이라는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나는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강가의 거친 바람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피어난 것,
그 자체가 작은 공훈일지도 모르지요.
11월의 초입, 나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흔들려도 괜찮아.
잊혀져도 괜찮아.
끝내 남아 피어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힘이야.”
나는 단양쑥부쟁이.
자갈밭에서, 강가 바람 속에서,
묵묵히 기다림과 그리움의 이야기를 전하는 꽃입니다.
https://youtu.be/TXetByaS6Fk?si=yrq8Fd840dICNjj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