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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 덧없음 속의 기품

11월 10일의 탄생화

by 가야

11월 10일의 탄생화 – 부용, 덧없음 속의 기품


부용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옛 시문 속에서는 *부용지안(芙蓉之顔)*이라 하여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뜻하기도 했고, 창덕궁(昌德宮) 후원에 자리한 부용정(芙蓉亭) 같은 정자의 이름으로도 쓰였다. 그만큼 부용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부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무궁화(無窮花) 같기도 하고, 접시꽃을 닮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 두 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고함과 기품이 있었다. 꽃송이는 얼굴만 할 만큼 크고, 색은 얼마나 깨끗한지, 그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낮아졌다.

우리 집 화단에도 부용이 세 그루 있다. 처음 씨앗을 받아 뿌렸을 때, 발아가 아주 잘 되어 그해 바로 꽃을 볼 수 있었다. 얼굴만 한 꽃이 활짝 피어났을 때의 기쁨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화단을 들락거리며 꽃을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꽃에는 해충이 붙지 않았지만, 잎은 애벌레와 알로 가득해 반쯤 말려 있었다. 떼어내고 없애도 끝없이 나타나는 벌레들, 자연 방제제를 뿌려도 그때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자연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부용은 여러해살이 관목이지만 겨울이 되면 줄기가 말라버린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관리를 잘못해 죽게 만든 줄 알고 애석해했다. 그런데 이듬해 봄, 땅에서 새파란 잎과 튼튼한 줄기를 밀어 올리며 다시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랍고 기뻤던지 모른다.

부용은 지는 모습도 정갈하다. 활짝 펼친 꽃잎이 이내 또르르 말리며 떨어지는데, 그 모습은 동백꽃(冬柏)보다도 더 처연하다. 특히 꽃이 워낙 크다 보니, 단 하루 만에 피고 진다는 사실이 선인들에게는 더욱 덧없음을 크게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아침에 흰빛으로 피어나 오후에는 분홍빛으로 짙어지고, 저녁에는 붉은빛으로 변해 스스로를 거두는 모습은 목화꽃(木花)처럼 하루의 흐름을 닮았다.

옛 선인들의 사랑과 기록

중국 당나라(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Bai Juyi, 772–846)는 연꽃(蓮)을 수중(水中)의 군자라 했다면, 부용을 땅 위의 군자라 불렀다. 송나라(宋)의 문호 소동파(蘇軾, Su Shi, 1037–1101)는 「후적벽부(後赤壁賦)」에서 가을 강가에 선 부용을 노래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청아한 자태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았다.

조선(朝鮮)의 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화첩에 부용과 나비를 함께 그려 넣으며 자연의 조화를 표현했다. 창덕궁(昌德宮) 후원의 부용정(芙蓉亭)과 부용지(芙蓉池) 역시 부용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곳이다. 선인들은 글과 그림, 건축 속에 부용을 새기며 삶의 이상을 노래했다.

서양에서의 부용

부용은 중국 남부와 일본에서 크게 사랑받았고, 조선에서도 화단과 궁궐에 심어졌다. 서양에는 18~19세기, 동아시아 식물이 유럽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전해졌지만 장미나 모란처럼 큰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미국 남부에서는 Confederate Rose 혹은 Cotton Rose라 불리며 일부 재배되었을 뿐이다.

부용의 쓰임새와 키우기

옛 본초학(本草學)에서는 부용의 꽃(芙蓉花), 잎(芙蓉葉), 뿌리(芙蓉根)를 약재로 기록했다.

꽃은 열을 내리고 염증과 종기를 가라앉히며,

잎은 상처에 붙여 해독과 진통을 돕고,

뿌리는 기침을 가라앉히고 해열에 쓰였다.


오늘날에는 약재로 거의 쓰이지 않지만, 민간에서 사람들의 곁을 지켜온 흔적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씨앗 발아가 잘 되어 키우기가 쉬운 꽃이다. 장마철의 습기에도, 한여름의 건조함에도 강하고 햇빛을 좋아한다. 다만 잎을 좋아하는 해충 관리가 필요하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부용의 개화는 정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나는 화단에서 부용을 바라보며, 왜 옛 선인들이 이 꽃을 두고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다. 얼굴만 한 큰 꽃이 단 하루 피었다 지니, 그 무상함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겠는가. 그러나 겨울이 지나 다시 돋아나는 새싹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의미의 희망과 생명력을 본다.


부용은 덧없음과 생명력, 두 얼굴을 동시에 품은 꽃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나를 두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정자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오늘도 화단에서 꽃을 피운 부용 앞에 서며, 나 역시 그들이 느꼈던 삶의 지혜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부용꽃이 한 송이 피었다.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서늘해져서일까, 잎도 말리지 않았다. 나는 오후가 되기 전 실컷 보고 또 보며, 그 짧은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다.


참고문헌

《본초강목(本草綱目)》, 이시진(李時珍, Li Shizhen, 1518–1593)

백거이(白居易, Bai Juyi), 시구 「부용과 연꽃」

소동파(蘇軾, Su Shi), 「후적벽부(後赤壁賦)」

신사임당(申師任堂), 「부용과 나비」 화첩

창덕궁(昌德宮) 후원 부용정(芙蓉亭)·부용지(芙蓉池) 기록


https://youtu.be/lXqOUMJY-XM?si=DsPAAhOrLHwWKt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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