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탄생화
꽃말: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어린 시절, 동백이라 하면 먼저 머리기름이 떠올랐습니다. 쪽진 머리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도록 바르던 동백기름. 저는 남쪽 내륙지방에 살았던 관계로, 동백꽃을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시기는 무척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른이 지나고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를 들었을 때, 제 마음은 번쩍 눈을 뜬 듯했습니다. “선운사에 가본 적이 있나요”로 시작되는 그 노래, 그리고 가사 속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는 구절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진다는 표현이 너무도 아름다워, 저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노래가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속에는 반드시 동백꽃을 보리라는 다짐이 자리잡았습니다.
이른 봄, 무작정 선운사를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선운사 뒷편이 온통 동백 숲이라는 말을 믿고, 차가 없던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갔습니다. 그러나 제가 너무 일찍 간 탓인지 동백은 피지 않았습니다. 터덜터덜 돌아오던 길, 대신 들려온 것은 논 웅덩이에서 개구리들이 짝짓기하느라 요란하게 내는 소리였습니다.
그 모습은 미당의 시 속 구절, “선운사 동백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없고, 막걸리 잔에 걸걸한 주모의 목소리만 남았다”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 역시 동백 대신 걸걸한 개구리 울음소리만 듣고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 뒤, 화개장터 인근 섬진강가에서 저는 마침내 붉은 동백을 만났습니다. 푸른 보리밭 가운데 우뚝 선 큰 동백나무가 붉은 꽃을 매달고 있었고, 그 꽃들이 정말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꽃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배추꽃은 노랗게 피어 있었고, 초록 보리밭은 바람에 출렁였으며, 벌과 나비가 분주히 날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비처럼 작은 돌담을 넘어 동백나무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날의 감격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동백은 한자로 겨울 동(冬), 잣나무 백(柏)이라 씁니다.
겨울에 꽃을 피운다는 뜻
늘 푸른 나무를 상징
즉, 동백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채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의미를 지닌 식물입니다.
일본에서는 ‘츠바키(椿)’라 하여 ‘굳센 나무’라는 뜻을 담았고, 중국에서는 ‘차화(茶花)’라 하여 차나무과에 속한 점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름만으로도 동백은 겨울의 강직함과 고결함을 상징합니다.
흰동백은 붉은 동백에 비해 보기 드물지만, 희소성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꽃말은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붉은 동백이 열정을, 분홍빛 동백이 청순한 사랑을 뜻한다면, 흰동백은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씨앗을 발아시켜 동백을 키운 적이 있습니다. 예전의 동백은 작고 애잔했지만, 요즘 개량종은 장미보다 더 붉고 화려하며, 다양한 색과 겹꽃으로 피어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홑동백을 더 사랑합니다. 겹꽃의 화려함보다 단아하고 단정한 홑꽃이야말로 동백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동백은 꽃이 귀한 겨울에 피어 옛 선인과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먼저 대중가요에서 동백은 한국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는 그녀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만들었고, 동백을 한국인의 한과 사랑의 상징으로 새겼습니다. 이어 송창식의 〈선운사〉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이라는 가사로 동백을 사랑과 이별의 꽃으로 굳혔습니다.
문학에서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그의 고향 고창 선운사의 동백 숲은 지금도 한국 동백의 성지로 여겨집니다.
중국에서는 동백을 ‘차화(茶花)’라 하여 시와 그림 속에 절개와 고결함의 상징으로 그렸습니다. 일본에서는 ‘츠바키’가 무사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통째로 뚝 떨어지는 꽃의 운명이 무사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귀족 여성들에게는 우아함과 장식의 꽃이기도 했습니다.
서양에는 동백이 자생하지 않았지만, 17세기 무렵 일본과 중국에서 전해져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교사 게오르크 카멜의 이름을 따서 카멜리아(Camellia)라 불리게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뒤마의 소설 『동백꽃 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통해 순수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의 꽃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흰동백이 전하는 말은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당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고요히 그러나 단호히 피어나는 동백처럼, 우리의 사랑도 소박하지만 변치 않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RTB_QWmIVAc?si=rPak36GsZeP5uX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