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탄생화
저는 사막의 바람 속에서 자라온 작은 나무입니다.
꽃은 소박하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제 몸에서 스며나오는 수지, 바로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하는 몰약(沒藥, Myrrh)입니다.
제 고향은 아라비아 반도 남부와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와 예멘의 건조한 사막입니다.
비가 드물고 흙은 거칠지만, 저는 그곳에서 꿋꿋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습니다. 저의 꽃은 작은 황백색.
아름다운 장식은 되지 못하지만, 제 몸에 상처가 나면 흘러나오는 수액이 햇볕과 바람에 굳어 향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그 향은 신성한 제례와 치유의 자리마다 함께했지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저의 수지를 약으로, 향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상처를 소독하고, 염증을 가라앉히고, 고통을 덜어내는 힘이 제 안에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병사의 상처를 감싸주기도 했고, 오늘날까지도 향수와 아로마 테라피로 쓰입니다.
하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가공하지 않은 저의 수액을 그대로 삼킨다면, 그것은 독이 되어 위장 장애와 구토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신의 선물이라 불렀습니다.
성서 속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세 가지 예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였습니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신성, 그리고 저는 예수가 겪을 고난과 희생을 상징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미라 곁에 두어 영혼이 하늘로 오르도록 도왔습니다. 제 연기는 태양신 라의 길을 밝히는 성스러운 향이었지요.
『아가서』의 연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의 입술은 몰약처럼 향기롭다.”
저는 사랑의 은유로도 불려 왔습니다.
제 이름, 몰약에는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옛날, 공주 스밀라(혹은 미르라)는 신들의 저주로 아버지와 금지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고통 속에 신들에게 구원을 빌었고, 결국 몰약나무로 변했습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굳어 제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 몰약나무의 껍질이 갈라지며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가 바로 아도니스였습니다.
아도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으로 자라났습니다. 저는 그의 첫 울음을 곁에서 들었고, 그의 눈부신 미소를 지켜보았습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잠시 맡겨두었던 저승의 여왕 페르세포네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두 여신은 서로 다투었고, 마침내 신들의 판결로 아도니스는 1년의 1/3을 아프로디테와, 1/3을 페르세포네와, 그리고 나머지 1/3을 자유롭게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두 세계를 오가는 존재가 되었지요. 삶과 죽음, 사랑과 어둠 사이에 선, 가장 덧없는 인간의 운명을 짊어진 셈입니다.
아프로디테는 늘 그에게 사냥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아도니스는 맹렬한 멧돼지를 쫓다 결국 그 뿔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피가 떨어진 자리에는 붉은 아네모네가 피어났습니다. 아프로디테가 달려가다 장미 덤불 가시에 발을 찔러 흘린 피는, 순백이던 장미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눈물에서, 아도니스는 피에서, 아프로디테는 상처에서 꽃을 피워낸 셈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신들의 비극이 이렇게 꽃이 되어 세상에 남았습니다.
예술가들이 이 이야기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동방박사의 경배」 속에서 예수 앞에 놓인 제 단지를 그려 넣었습니다.
금빛 선물들 사이, 저는 고난과 희생을 예고하는 조용한 징표로 자리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벽화와 부장 예술 속에서, 저는 영혼을 저 너머로 인도하는 향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티치아노의 「아도니스의 죽음」, 루벤스의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 같은 그림 속에서는
사랑과 청춘의 덧없음이 붓 끝에 담겼습니다.
시와 성서 속에서는, 몰약은 여전히 사랑의 향기를 노래하는 은유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작은 꽃에 불과하지만, 제 안에 담긴 향기는 인류의 역사와 신화, 사랑과 예술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겉모습은 소박해도, 향기는 영원히 남습니다.
그 향은 눈물과 피를 지나, 마침내 예술 속에서 다시 꽃이 되었습니다.
✿ 오늘 제가 드리는 말은 이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향기를 남깁니다.”
https://youtu.be/TTEQfaAKd7o?si=OfG4_ItgayCsFo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