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
지금 모과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모과를 생각하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한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과일이지만 생긴 것도 울퉁불퉁 못생기고 칼로도 자르기 힘들 만큼 단단한 과육은 너무 시고 떫어 먹을 수 없어 쓸모없다고 하여 생긴 속담이 아닌가 싶다.
모과를 보면 인사동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아내였던 목순옥 여사 님이 운영하던 '귀천'이 생각난다.
귀천의 모과 차 맛은 일품이었다.
지금처럼 인사동에 번잡하지 않았을 때, 늦가을이나 겨울 인사동 화랑을 한 바퀴 돌다가 다리도 쉴 겸 귀천에 들리곤 했었다.
어수선한 귀천에는 언제나 계절에 어울리는 한 아름 꽃이 큰 화병에 꽂혀있었다. 오후 이른 시간에 귀천에 들리면 남대문 시장에서 사 온 꽃을 테이블 가득 늘어놓고 손질을 하던 목 여사를 볼 수 있었다.
편치 않은 의자에 앉아 마시던 모과 차!
분청 잔은 한 손으로 들 수도 없을 정도로 컸고 손잡이도 없었으므로 두 손으로 들고 마셔야 했다. 모과 차 잔에서 몸 전체로 찻잔의 따뜻한 온기가 퍼져 더욱더 행복했었다.
그 모과 차 맛이 너무 좋아 어느 해 가을 집에서 직접 모과 차를 담그기로 했다.
모과를 구입하여 잘게 자르려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자를 수 없어 남동생의 힘을 빌려야 했고, 그렇게 힘들게 썬 모과에 설탕을 켜켜로 넣어 모과 청을 담았다. 그리고 집에서 귀천에서 맛보던 모과 차 맛을 기대하며 모과 청이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모과 청을 덜어 찻잔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귀천에서 마시던 그 모과 차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목 여사에게 어떻게 해야 목 여사님처럼 모과 차를 끓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단발머리 차림의 목 여사 님이 까르르 웃으시더니 말하였다.
모과 차에 특별한 비밀이 있는 데, 이 선생님한테 몰래 알려주겠노라고.
목 여사 님이 알려준 비법은 시중에서 파는 대추 청에 모과 청을 넣어야 제대로 된 모과 차 맛이 난다고 한다.
곧바로 낙원상가에 들려 대추 청을 구매하여 집에 돌아와 목 여사님이 알려준 대로 대추 청을 큰 스푼으로 두 개 넣고 모과 몇 조각을 넣었더니 오! 귀천에서 먹던 것과 거의 비슷한 모과 차 맛이 나는 게 아닌가!
우리 사무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귀천에서 먹던 모과 차와 똑같은 모과 차를 대접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곧 그만두고 말았다.
차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제가 만든 달달한 모과 차는 믹스 커피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과(木瓜)는 장미목 장미과 식물 모과나무의 열매다. 한자로 木瓜라고 쓰지만 모과로 읽는다. 강원도와 경상도 전라도에서는 모과를 모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과는 과실로 인기는 없지만 나무줄기가 배롱나무처럼 아름다워 분재 용이나 원수로 사랑을 받아온 나무이다. 배롱나무 줄기와 모과나무줄기는 많이 비슷하다. 위 사진에서 왼쪽이 배롱나무 줄기 오른쪽이 모과나무줄기이다. 추위에 강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재배가 가능한 모과나무
지금처럼 방향제가 없던 시절 모과는 방향제 역할을 하였는데 방안이나 자동차 안에 모과 한두 개가 놓여 있기도 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구토와 설사를 다스리고, 소화를 도와주는 과일’이라고 하였고, <본초강목>에는 ‘가래를 멎게 해 주며 주독을 풀어준다’는 기록이 있다. 모과는 폐를 도와 가래를 삭여 주고 기침을 멎게 하여 만성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으며, 체력이 약하여 쉽게 피로를 느끼거나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에게 좋다. 또한 폐를 튼튼히 하고 위를 편하게 해 준다.
모과의 신맛을 내는 유기산은 근육을 이완시키는 효능과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어 근육 경련이나 쥐가 났을 때 관절통이나 신경통에도 효과가 있다. 이 밖에 무릎이 시큰거릴 때 다리가 붓고 아플 때,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을 때 팔다리가 저릴 때에도 유용하다. 그러나 변비가 있으면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모과는 당뇨에도 좋은데 모과의 단맛 과당이 혈당의 상승을 막아주어 체내의 당분 흡수를 더디게 하고 이미 흡수된 당분의 소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모과를 설탕에 절여 모과 차로 마시거나 술로 담가먹으면 좋고, 모과를 이용해 캔디나 약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모과에는 감기, 천식 등에 좋은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특히 씨에 이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모과 차와 모과주 등을 담글 때 씨를 제거하지 말아야 한다.
모과는 9월~10월 늦가을이 되어야 제대로 익는다. 색이 노랗고 흠집이 없으며 너무 울퉁불퉁하지 않고 표면이 미끈하며 향이 진한 것이 좋은 모과다. 덜 익은 모과는 신맛과 떫은맛이 강하니 피하여야 한다. 잘 익은 모과는 표면이 끈적거리는 데 이 끈적거림은 모과의 향과 풍미를 좋게 하는 정유 성분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과를 말려서 보관할 때는 겉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다음 얇게 썰어 햇볕에서 말린다.
모과는 겉껍질에 향을 내는 정유성분이 있어 겉껍질이 미끄럽고 단단하여 자를 때 조심해서 잘라야 한다.
신문지에 싼 후 냉장고 야채실에서 보관하면 2개월 정도 보관할 수 있다. 장기간 보관하려면 말린 다음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모과나무를 중국에서는 護聖果(호성과)라 하는 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먼 옛날 공덕이 높은 한 스님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중간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커다란 구렁이를 만나게 되었다.
스님은 앞으로 가자니 구렁이가 있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도 난감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다.
스님이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외나무다리 쪽으로 가지를 길게 드리우고 있던 모과나무에서 모과 하나가 구렁이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깜짝 놀란 구렁이는 물로 떨어졌고 스님은 무사히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공덕이 높은 스님을 모과가 보호했다는 뜻으로 護聖果(호성과)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