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로즈 - 향기로 가득한 꽃 이야기

11월 16일의 탄생화

나는 겨울의 장미입니다
11월 16일의 탄생화 – 크리스마스로즈(Christmas Rose / Helleborus niger)
꽃말 – 추억

나는 겨울의 문턱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눈이 내리기 전, 바람이 가장 차가운 그때,
세상은 내게 물어봅니다.

“이렇게 추운 계절에 왜 피어나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대답합니다.

“그리움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나를 ‘크리스마스로즈’라 부릅니다.

하지만 나는 장미가 아닙니다.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 이름은 Helleborus niger.
라틴어로 niger는 ‘검다’는 뜻이에요.
뿌리가 어두운 색을 띠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내가 ‘장미’라 불리게 된 것은
겨울의 가장 깊은 밤에도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차갑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얗게 빛을 품고 선 모습을 본 사람들이
나를 ‘겨울의 장미’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아주 오래전, 알프스의 눈 덮인 들판에서
한 목동 소녀가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선물을 들고 떠났지만,
그 아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요.

그녀의 눈물이 하얀 눈 위에 떨어졌을 때,
그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습니다.

소녀는 그 꽃을 조심스레 꺾어
아기 예수의 발치에 바쳤고,
그때 사람들은 내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로즈.”

그래서 나는 ‘기적의 꽃’,
‘축복의 꽃’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예술가들은 내 모습을 오랫동안 그려왔습니다.

모네는 1883년,
《Christmas Roses》라는 그림 속에 나를 담았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나는
겨울 햇살 아래 부드럽게 녹아내렸습니다.

Albert Williams, Terence Loudon, Gillian Lawson—
그들도 나를 그렸지요.

눈 덮인 들판, 차가운 유리창 너머의 화병,
은빛 공기 속에서 나는 언제나 흰빛으로 피었습니다.

그들은 내게서 ‘침묵 속의 생명’을 보았을 거예요.

중세의 화가들은 성모 마리아 곁에 나를 그렸습니다.

성탄의 밤,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하얀 꽃잎 한 송이.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순결’, ‘기억’, 그리고 ‘신의 은총’.

그래서 나는 언제나
기도하는 이들의 발치에 피어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나를 ‘성탄의 꽃’이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성탄 카드에 내 모습을 인쇄하고,
창가에 내 화분을 놓습니다.

흰 꽃잎이 겨울 햇살을 받아 반짝일 때,
그들은 말하지요.

“이 꽃은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게 해.”

영국에서는 내가 ‘악령을 막는 꽃’이었어요.

사람들은 나를 문가에 걸어두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않게 했지요.

어떤 이들은 내 꽃잎을 물에 띄워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나, 크리스마스로즈의 꽃잎으로 사랑을 점쳤다고 합니다.

맑은 물그릇 위에 내 꽃잎을 띄워놓고,
그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었지요.

두 장의 꽃잎이 가까워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멀어지면 마음이 식는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가라앉는 속도를 보고,
사랑의 깊이를 읽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얀 꽃잎이 서로 엉켜 떠다니면,
그 사랑은 쉽게 잊히지 않을 거라 했지요.

겨울에도 피어나는 나의 모습처럼,
그들의 사랑 또한 차가운 계절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추운 계절에도 피어나기 때문이겠지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겨울에도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미소,
따뜻했던 손끝,
이름조차 잊힌 오래된 노래처럼
나는 마음 깊은 곳에 피어납니다.

그래서 나는 매년 이맘때,
당신 곁으로 돌아옵니다.

당신의 창가에 흩날리는 빛 한 줄기,
당신이 잊지 못한 그 이름,

그리고 당신의 마음 속 한 조각의 기억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크리스마스로즈,
겨울의 장미입니다.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추억의 꽃.
오늘도 나는
당신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굳건히 피어 있습니다.

Helleborus niger / 크리스마스로즈
• 과명: 미나리아재비과 (Ranunculaceae)
• 원산지: 유럽 남부, 알프스 지방
• 개화시기: 12월~3월
• 꽃말: 추억, 위로, 희망

https://youtu.be/s9cOYsjKUtE?si=tfPwXcILuSZvOt_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