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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마지막 붉은 숨결, 낙상홍(落霜紅)이야기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겨울의 마지막 붉은 숨결, 낙상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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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을 걷다 보면, 모든 색이 사라진 풍경 속에서 유독 강한 생명력을 품은 붉은 점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열매만은 가지 끝에서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남아 있는 식물, 바로 낙상홍이다. 조용한 계절의 그림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는 이 작은 관목은, 겨울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 오히려 더 빛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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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상홍의 이름이 품은 의미

낙상홍의 학명은 Ilex serrata, 한글로는 일렉스 세라타라고 읽는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이 식물은 우리나라 산야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으며, 겨울이면 더욱 선명한 붉은 열매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낙상홍’이라는 이름은 잎이 모두 떨어진 뒤에도 열매가 두 줄처럼 남아 있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도 꺼지지 않는 붉음이 남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낙상홍은 잎보다 열매로 기억되는 특이한 겨울 관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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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버티는 작은 생명력

낙상홍의 열매는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초봄까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혹독한 계절에도 가지에 오래 남아 있어 겨울철 새들에게 중요한 먹이가 되고, 생태계 속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이 열매는 단순한 관상적 요소를 넘어, 겨울 속에서도 생명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잎이 모두 사라진 뒤에 비로소 드러나는 붉음이기에, 사람들은 낙상홍을 볼 때마다 계절을 견디는 힘과 생명의 끈질김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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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 내려오는 낙상홍의 작은 전설

낙상홍 열매를 먹는 새

옛이야기 속에서 낙상홍은 겨울 숲의 수호자처럼 등장한다. 먹이를 찾아 헤매던 새들이 혹독한 추위로 지쳐가자, 낙상홍이 자신이 가진 열매를 모두 내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작은 열매 덕분에 새들은 겨울을 견딜 수 있었고, 숲은 다시 봄을 맞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상홍의 열매를 단순한 붉은 구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온기, 절망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불씨로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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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말이 전하는 낙상홍의 성품

낙상홍이 지닌 꽃말은 ‘굳은 의지’, ‘인내’, ‘희망의 불빛’이다.
겨울에 오히려 빛나는 식물의 특성 때문에, 낙상홍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계절을 견디는 힘을 상징한다. 자연은 늘 겉모습보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낙상홍은 그 이야기가 유난히 아름답게 드러나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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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속에서 되살아난 겨울의 붉음

동아시아 회화에서 낙상홍은 겨울 산야를 장식하는 중요한 소재로 종종 등장한다. 한국의 민화에서도 눈 내린 풍경 사이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넣듯 표현된 낙상홍 열매는, 침묵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정서를 상징하는 장치였다.



또한 일본 근대 회화에서는 낙상홍의 붉은 열매를 계절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로 묘사하며, ‘겨울 속의 마지막 색채’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현대 사진 예술에서도 낙상홍은 자주 등장하는데, 흐릿한 배경 속에서 열매만 선명하게 남기는 방식으로 겨울의 미묘한 정서를 포착한다. 흰 설원이 아무 표현도 갖지 않은 빈 공간처럼 보일 때, 낙상홍의 붉음은 한 점의 강렬한 예술적 대비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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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에서 마주하는 낙상홍의 위로

정원에 낙상홍을 심어두면, 가을에는 하루가 다르게 붉어지는 열매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잎을 모두 잃은 가지 끝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생명의 색을 바라볼 수 있다.


가끔은 그저 붉은 열매 몇 개가 겨울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계절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낙상홍은 겨울의 정원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식물 중 하나다. 존재감은 크지 않지만, 가장 어두운 계절에 가장 밝게 빛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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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모든 잎이 떨어져도 끝까지 남아 겨울을 밝히는 낙상홍의 붉은 열매처럼, 사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낙상홍을 바라보는 겨울 산책길은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이 작은 붉음은 결국,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생명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알려준다.


https://youtu.be/4gPEhnDuQ1Q?si=fPmB-EWc2bPL_8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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