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큰꿩의비름과 함께한 시간이 어느새 다섯 해를 넘었습니다.
처음 이 식물을 심었을 때만 해도, 그저 이름이 예쁘다는 이유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큰꿩의비름은 제 화단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씨앗으로 파종해두면 다음 해에도 스스로 싹을 틔우고,
물 한 번 주지 않아도 꿋꿋이 자라며,
혹독한 겨울에도 잎이 얼지 않고 푸르름을 지켜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식물을 바라볼 때면 늘 기특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따뜻해집니다.
오늘은 그 고운 생명력으로 화단을 밝혀주는 큰꿩의비름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학명은 Hylotelephium spectabile이며, 돌나물과(Crassulaceae)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나 양지바른 바위틈에서도 흔히 자라며,
키는 30~70cm 정도로 곧게 자라는 편입니다.
잎과 줄기는 다육질이라 수분을 머금고 있어 건조에도 강하고,
가을이 되면 줄기 끝마다 수백 송이의 작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납니다.
그 꽃차례의 모양은 마치 가을 햇살을 모은 구름처럼 풍성하고, 화단을 환하게 물들입니다.
‘꿩의비름’이라는 이름은 우리 조상들의 세심한 관찰과 감성이 담긴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꿩의’는 꿩이 자주 다니던 들판이나 산비탈을 뜻하며,
‘비름’은 잎 모양이 쇠비름처럼 둥글고 부드러워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로 꿩의비름은 산비탈과 초원,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옛사람들은 꿩이 이곳을 좋아해 자주 드나들었다 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꽃빛이 꿩의 깃털에 비치는 자줏빛 광택과 닮아
‘꿩의’라는 이름이 더해졌다고도 전합니다.
그만큼 이 식물의 이름에는 자연의 색감과 생태, 그리고 사람의 정서가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큰꿩의비름의 꽃은 붉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보랏빛입니다.
하지만 그 은은한 색감이 수백 송이의 작은 꽃으로 모여 피어날 때,
그 아름다움은 놀라울 만큼 화려해집니다.
햇살 아래에서 보면 일본조팝꽃을 닮은 듯,
보랏빛과 분홍빛이 섞여 눈부신 광채를 냅니다.
멀리서 보면 단정하고 조용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 가을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섬세하고 빽빽한 꽃송이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내는 색의 물결은
어떤 화려한 장미보다도 더 깊고 풍성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꽃을 ‘조용한 화려함’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한 송이는 작지만, 함께 모이면 화단 전체가 환해지고,
그 빛이 가을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큰꿩의비름의 꽃말은 ‘희망’, ‘인내’, 그리고 ‘생명’입니다.
비바람과 가뭄에도 쓰러지지 않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
그 존재 자체가 견딤의 미학이자, 자연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꽃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우리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제 화단에서 큰꿩의비름은 이미 오랜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봄이면 조용히 잎을 내밀고, 여름 내내 묵묵히 자라다가
가을이면 세상을 연보랏빛으로 물들입니다.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아,
그 존재만으로도 화단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때로는 생각합니다.
이토록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가 또 있을까 하고요.
큰꿩의비름은 말없이 제 곁에서 사계절을 견디며,
매년 같은 자리에서 다시 희망의 색을 피워냅니다.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는 큰꿩의비름을 바라봅니다.
다른 꽃들은 이미 지고 사라졌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화단 한가운데에서 가을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 연보랏빛의 빛깔은, 어느새 제 마음까지 따뜻하게 물들입니다.
“괜찮아요, 다시 피어날 거예요.”
그 꽃이 제게 그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https://youtu.be/yT6FUkSu4Jg?si=R-y_e7KxiZoAGwY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