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 잿빛 겨울에 남아 있는 불씨 같은 붉음
겨울이 깊어질수록 풍경의 색은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색이 있다. 잎보다 열매가 더 선명하게 남는 식물, 피라칸타가 그렇다.
공주 마곡사 대웅전 앞에서 마주했던 피라칸타는 잿빛 겨울의 결 속을 뚫고 서 있는 하나의 작은 불씨 같았다. 누구도 크게 외치지 않는데도, 조용히 존재를 드러내는 강렬함이었다.
◆ 불의 가시라는 이름
피라칸타의 학명 Pyracantha는 그리스어 pyro 불, akantha 가시에서 온 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식물을 떠올릴 때, 붉은 열매와 가시라는 두 단어는 하나의 그림처럼 붙어 있다.
특별한 전설이 남아 있는 식물은 아니지만, 이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서사적인 향을 가진다. 꽃보다 열매가 기억에 남고, 그 열매가 꽃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매혹적이다.
아쉽게도 이 꽃에 대한 꽃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 겨울의 침묵과 대비되는 붉음
처음 마곡사 대웅전 앞에서 이 붉은 열매를 마주했을 때, 그는 잠시 현실의 질감이 흐려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잿빛과 목조의 무채색이 주도하는 겨울 사찰의 미감 속에서 유독 또렷하게 살아남아 있는 그 강렬한 붉음은, 마치 침묵으로 정지된 계절을 조용히 깨우는 발화점 같았다.
눈으로 보면 분명 정적인 풍경인데, 그 붉은색을 중심으로 주변의 색이 되살아나는 듯한 묘한 대비는, 붓질로 덧칠한 회화 작품 한 구석에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가장 선명한 색 한 방울처럼 오래 남았다.
◆ 계절 속에서 더 아름다워지는 이유
피라칸타는 가을에 익은 열매가 겨울까지 떨어지지 않고 오래 남는다. 열매 자체가 계절의 힘을 견디고 버티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눈과 서리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색은 오히려 계절의 깊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찰 건축의 고요 속에서 피라칸타의 붉음은 하나의 시점이자 하나의 고백처럼 남는다. 겨울은 빛을 잃는 계절이 아니라, 색이 하나로 응축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 식물은 침묵 속에서 보여준다.
◆ 식물로서의 실용적 면모
장미과 상록 관목인 피라칸타는 햇빛이 좋은 자리에서 열매를 더 풍성하게 달고, 관리도 까다롭지 않다. 다만 가시가 있어 전정할 때 조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이 식물이 겨울의 풍경을 완성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꽃이 아니라 열매가 계절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피라칸타의 존재 방식이다.
사라지는 것보다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에 사람은 더 오래 눈길을 준다. 피라칸타는 그 사실을 보여주는 식물이다.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견디고 남아 있는 표정 속에서 진짜 색이 완성된다는 것.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피라칸타의 붉은 열매가 그 이야기를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https://youtu.be/8BBCjUZDf-0?si=XyCYNESH2wuEZ70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