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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시다 -내 년 봄 꽃을 보려면

가야의 꽃 이야기

by 가야

◈ 애니시다, 노란 꽃보다 먼저 배운 기다림


애니시다는 처음부터 나에게 쉬운 식물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작은언니에게 선물받았을 때만 해도, 노란 꽃이 이렇게 까다로운 성격을 지녔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탐스럽게 피어난 노란 꽃도 좋았지만, 손끝에 스며드는 상큼한 향이 유독 마음에 들어 애니시다는 유난히 아끼는 화분이 되었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두고 물 주는 날을 기억하며 돌봤다. 그저 꽃이 예쁜 식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 잎이 비처럼 떨어지던 가을


가을이 오자 고민이 시작됐다. 몸집이 제법 커진 애니시다를 밖에 둘지, 안으로 들일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책상 옆,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두었는데 며칠 뒤 믿기 힘든 장면을 보게 되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 잎이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둘도 아니고, 그 많던 잎이 우수수, 정말 우수수 떨어졌다. 잎들은 마치 이곳에 더 머물 이유가 없다는 듯 단번에 등을 돌렸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이 아팠다. 결국 보기 싫다는 이유로, 속상하다는 이유로 가지를 댕강댕강 잘라냈다. 그러고는 봄이 오면 괜찮아지겠지, 다시 꽃을 보여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 꽃 대신 잎만 무성했던 한 해


하지만 봄은 꽃을 데려오지 않았다. 초여름이 올 때까지 애니시다는 잎만 무성하게 키워냈다. 작년 가을에 모두 떨어뜨린 잎을 만회하려는 듯, 줄기마다 새 잎을 빼곡히 달았지만 꽃은 없었다.


혹시 햇볕이 부족한가 싶어 아파트 복도로 옮겼고, 더 나아가 하루 종일 볕이 드는 1층 화단으로까지 자리를 바꿔 보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같았다. 꽃은 피지 않고 잎만 자랐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가을이 왔다.


◈ 다시 가을, 다시 같은 고민


작년처럼 잎이 다 떨어질까 두려웠지만, 노지월동이 되지 않는 식물을 밖에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집 안으로 들였다. 이번에는 작년보다 덜하긴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은 또다시 노랗게 변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쓸고 또 쓸고, 차라리 한꺼번에 다 떨어져 버리길 바라며 가지를 흔들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잎은 바닥에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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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가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큰언니가 말했다. “추운데 있다가 따뜻한 데 오면 당연히 잎 지지. 잎 다 지면 새 잎 나.” 맞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 애니시다가 선택한 자리, 베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이 아니라 베란다로 옮겼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뒤로 잎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에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애니시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환경’에 예민한 식물이라는 것을.


애니시다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콩과 식물로, 햇볕을 좋아하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가을과 겨울, 실외에서 실내로 옮길 때의 온도 차와 빛의 변화는 애니시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이때 잎을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것은 병이 아니라, 에너지를 줄여 살아남으려는 생존 방식에 가깝다.


◈ 꽃이 피지 않았던 이유


따뜻한 방이 식물에게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애니시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다. 난방이 되는 실내는 너무 따뜻하고 건조하다. 반면 햇볕이 들고, 온도는 낮지만 급격히 춥지 않은 베란다는 애니시다에게 겨울을 나는 데 훨씬 안정적인 공간이 된다.


그리고 꽃이 피지 않았던 이유도 분명하다. 가을에 대량 낙엽을 겪은 애니시다는 다음 해를 꽃의 해로 삼지 않는다. 그 해는 회복의 시간이다. 줄기와 잎을 다시 키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 시간을 거쳐야만, 다음 해 봄에 비로소 꽃눈을 준비할 수 있다. 애니시다는 빠르게 보상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확실하게 돌아온다.

재작년 가지를 몽땅 잘랐을 때의 모습


◈ 꽃을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애니시다에게 묻지 않기로 했다. 왜 꽃을 피우지 않느냐고, 왜 이렇게 까다롭냐고. 대신 묻는다. 지금 어디가 가장 편한지, 어떤 온도에서 숨 쉬기 쉬운지. 식물은 말 대신 잎으로, 줄기로, 침묵으로 대답한다. 잎이 멈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꽃은 내년 봄에 피어도 괜찮다. 애니시다는 지금,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으니까.

2023년 이른 봄 애니시다를 처음 선물받았을 때 모습


애니시다 요약 정보
· 애니시다는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한 식물
· 가을·겨울 실내 이동 시 대량 낙엽은 자연스러운 반응
· 따뜻한 방보다 서늘한 베란다가 겨울나기에 적합
· 꽃이 없던 해는 회복의 시간
· 꽃은 기다릴수록 더 확실하게 돌아온다


https://youtu.be/ni1pLiH111I?si=TajzYEcysnzQ5p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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