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시 11
너무 젊은 회한과 일찍 늙은 불안이
아직 화해하지 못했기에 다만 기웃거릴 뿐
어디에도 낄 곳은 없었다
다행히, 나만의 골방을 새로 짓거나 광야로 뛰쳐나갈
힘과 용기가 없음을 일찌거니 알아차렸다
결코 인기를 끌 일 없이 늘어지는 음악과
일찍 진부해져 결말이 읽히는 드라마가
내 책임인 것만 같아 난처했었다
힘차게 달리기에는 지나온 먼 길로 지쳤고
주저앉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기에
할 수 없이 ‘위기’ 보다는 ‘난감難堪’을 화두로 붙들었다
놀랍고 새로운 세상은 더 이 상 없음을 알았고
진리 따위의 말은 일리一理로 바꿔 읽기 시작했지만
흙으로 지어진 눈과 귀가 벌써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요행히, 모르고 모른다는 모르스 부호만이 내게로 타전되었다.
각종 아르바이트, 공장 근로자, 영업사원, 친구들과의 창업, 과일 장사, 등등을 전전하고 나니 중년이 코 앞이었다. 돌아보면 언제나 ‘난, 감感이 늦고’, ‘촉이 무디고’, '한 발 늦은 경험주의자'였기에 이것저것 만져보고 둘러 보고서야 세상엔 별 게 없음을 뒤늦게 감지했다. 그제야 ‘삶의 이면’을 조금씩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난감’함도 함께였다. 곧 들이닥칠 생의 결산보고서와 득실 명세서도 떠올랐다. 그렇다고 기울어져 가던 삶의 축대를 세워 보자고 다시 학교에 갈 용기나, 스승을 찾아 천하를 주유할 객기는 없었다. 남은 건 한 가지 방법뿐, 고개 처박고 무식하게 용맹정진(?)의 흉내를 내보는 수밖에. 다행히 조금씩 조금씩 알아차려갔다. '얼마나 대충 알고 있었던가 - 아니,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구나 – 내가 고민한 모든 분야에는 앞서간 선생과 선지자들이 있었구나. 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선지자들의 말은 옳았다. 왕도는 없었다. 더듬더듬, 꾸역꾸역, 낑낑대는 수밖에는. 다행히 신비로운 공부의 정원은 어린아이도, 중년도, 늙은이도, 심지어 창녀도 내쫓지 않았다.